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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박문수의 실패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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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의 실패담

박문수는 영조때의 암행어사로 단신 조선팔도를 두루 다니며, 군수·현감들의 치불치를 조사하고, 민정을 시찰하여 내정의 개선에 크게 이바지했다.

 

 

 

 

 

◇ 제1화 ◇

 

어떤날 박어사는 깊은 산길을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기며 혼자 걷고 있었다. 그때 한 촌로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헐레벌떡 달려오며, 박어사를 보고,「제발 나를 좀 숨겨 주십시오. 바로 뒤에 강도가 따라 옵니다. 어디에다 나를 감추어 주시고 모른다고 해 주십시오」하며 길가 덩굴 밑으로 숨어버렸다. 그러나 얼마안가서 과연 한 험상궂은 사나이가 그도 가뿐 숨을 내쉬며 뒤쫓아 나타났다. 그는 사방을 살피다가 박어사를 보자 면전에다 비수를 들이대면서, 「지금 이리로 도망쳐 온 놈이 어디로 갔는지 바른 대로 대라. 거짓말을 하거나 우물 쭈물하면 너의 목숨은 없다」
하며, 바로 찌를 듯이 덤볐다. 당대의 현인 박문수도 여기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그 촌로가 숨은 넝쿨 쪽을 가르켰다. 물론 그 촌로는 악한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박어사는 그날 종일토록 그 일이 마음에 걸려 견딜 수가 없었다. 촌로를 구하지 못한 자책감이 그를 괴롭혔던 것이다. 저녁놀이 붉게 서천을 물들었을 때야 그는 어떤 한촌)에 이르렀다. 마을 입구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모여 사또놀이를 하고 있었다. 어사 박문수는 무심히 그 애들의 놀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아이가 돈 삼전을 사또 앞에 내 놓으며,
「이돈 삼전을 우리들 누구에게도 불평을 하지 않게 나누어 주십시오」
하고 아뢴다. 그러나 사또인 그 애는 두 어린이의 송사를 해결하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곁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한 어린이가 앞에 나다나더니,
「그것은 힘들 것 없어, 그 돈 이리 주어」하며 돈 삼전을 받아 들고온, 일전씩 각각 두 어린이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 일전을 자기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이것은 나의 구전이다. 이렇게 하면 아무도 불평하지 않겠지?」
하며 빙그레 웃는다. 이 일을 지켜보고 있던 박어사는 크게 감탄하여 난생 처음으로 실패했던 아침결의 그 일을 이 어린 애에게 물어 보기로 작심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애에게 다가서며,
「만일에 어떤 행인이 여차 여차한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해야만 자기도 죽음을 면할 수 있고, 또 그 가련한 촌로도 구할 수 있었겠는가?」
하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애는 바로 그 자리에서 답하기를,
「그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쫓기는 촌로를 넝쿨 밑에 숨겨주고, 자기는 장님 행세를 하면 그만입니다. 그것이 무엇 어려운 일입니까?」
하고 또렷이 답했다.
어사박문수도 그 애의 꾀에는 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제2화 ◇

 

어사 박문수가 예의 암행을 하고있던 어떤 날, 그는 한 마을의 서당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에는 많은 애들이 모여 원 놀이에 정신이 빠져 있었다.
원(員)에 뽑힌 한 아이는 엄숙한 얼굴로 상좌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다른 한 아이가 부복하며 아뢰기를
「원님, 소인은 지금 소인이 가지고 있던 꿩을 놓쳐 버렸습니다. 제발 그 꿩을 도루 찾아 주십시오」한다. 이 말을 엿들은 박문수는 가만히 생각했다.
「만일 내가 이 송사를 판결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며, 원이되어 있는 그애의 판결을 흥미있게 지켜보며 방한구석에 앉아 있었다.
그랬더니 원이 되어 있는 그 애는「꿩을 잃었다면 그 꿩은 필경 산으로 도망 쳤음이 분명하리다. 그렇다면 그대의 꿩을 감추어 준 놈은 산이니, 그 산을 이곳에 데려오도록 해라. 그렇게 하면 내가 꿩을 돌려주도록 일러주리다」
하고, 큰기침을 하며 그애를 바라보았다. 이 판결을 들은 박어사는 무릎을 치며, 그원이 된 아이 앞으로 다가서 그 애의 놀라운 지혜를 칭찬해 주었다. 그러자 그 소년 원님은, 정색을 하며 엄숙한 어조로,
「어떤 무례한 놈이 함부로 관청에 들어 와서 관원을 모욕하는 거냐? 이 자를 포박하여 하옥해라」하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그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관졸이 된 어린이들이 앞으로 달려나오더니 박어사를 포박하여 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 옥이래야서 서당 옆에 있던 뒷간이었다.
박문수는 어린애들의 원놀이가 어떻게나 진지한지,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원이 된 소년이 그 뒷간 감옥까지 찾아와서는,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 절하면서, 「조금전에는 큰 실례를 했습니다. 실은, 우리들의 원놀이가 한낮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우리들의 태도는 진실되어야 하며 또한 법도 엄중히 다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존장에게 그러한 봉변을 주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사과했다. 박어사는 더욱 감복하여 그를 서울로 데러가서 뒤를 돌보아 주었다고 한다. <조선민담집>

 


사신간의 손 문답

 

옛날에는 중국의 사신이 조선 왕조를 방문하게 되면, 조정에서는 이들의 영접을 위하여 가진 애를 썼다. 더욱이 그들은 조선에 뛰어난 인물이 있나 없나를 시험하기 위하여 난제를 걸어 오는데는 질색이었다.
어떤 해 가을에도 갑작이 중국에서 사신이 온다는 전갈이 왔다. 조선조정에서는 그들을 맞이할 적당한 영접사를 팔도에서 구하기로 했다. 그때 한 북굼떡(煎餌)을 좋아하는 청년이 나타나서 그 영접사 되기를 자청했다. 그 청년은 원래 집이 가난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북굼떡을 단 한번도 배부르게 먹어보지 못했다. 이 일이 한스러워 그는, 「영접사가 되면 내가 좋아하는 그 북굼떡을 싫도록 먹을 수가 있겠지, 할 일이야 어찌 되든 상관 할 바 아니다. 다만 죽는 일이 있더라도 한이나 풀고 죽자」
하고, 내심으로 결심 자원했던 것이다.

조정에서는 그에게 일생의 소원이던 북굼떡을 마음껏 먹게 하고는 관복관(官服官帶) 차림으로 의주까지 가게 하여, 중국 사신을 영접케 했다. 중국 사신은 압록강 강변에 이르자 손가락 네 개로 네모(방형)를 만들어 높이 쳐들었다. 그런데 조선의 사신은 이 모양을,
「북굼떡은 네모(방형)인가?」
라고 묻는 것으로 알고 그도 손가락으로 원을 그려 보이여,
「아니오 그것은 둥근(원형) 것이오」
하고 답해 주었다. 그랬더니 중국사신은 다시 손가락 셋을 들어 보였다. 조선의 사신은 이것을,
「그대는 북굼떡 셋을 먹을 수 있는가?」
라고 묻는 것으로 알고,
「그럼요 아직도 다섯은 더 먹을 수 있지요」
라는 뜻으로 손가락 다섯을 펴 올렸다. 그 다음 다시 중국 사신은 그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조선의 사신은 이것을 또,
「이미 다 먹었으니 수염이라도 쓰다듬을 생각이냐?」
하고 묻는 것으로 알고,
「사실 그렇소 이제는 배부르오」
라는 뜻으로 그의 배를 두들겼다.
중국사신은 퍽 놀랜 기색을 지우며 그만 도로 중국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의 종자가 그 연유를 물었더니,
「조선국에는 정말 위인이 있네, 맨 처음 내가 지리를 아느냐하고 물었더니 그는 천문까지도 안다. (天圓地方: 원래 지구는 네모난 것으로 알았으며, 하늘은 둥근 것으로 알고 있었다.)라고 하드라. 다시 내가 삼강을 아느냐 하고 물었더니, 그는 오륜까지도 안다 하드라. 나는 다시 염재신농시(炎과 髥은 동음)를 아느냐하고 물었더니, 그는 태호복희씨(伏과 腹은 동음)도 안다 하며 대답했네. 정말 그는 위대한 인물이야.」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조선민담집>

 

상하의 기인

 

춘추시대 진 나라영공 때 (B.C 620∼B.C 607)의 일이다. 어떤 여름날 재상 조순은 몇 가신을 거느리고, 인근 수산에 수렵하러 가는 길이었다. 산에 이르는 길은 그 일대가 모두 뽕나무 밭이라 인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어수선한 세상이라 재상이나 종자는 모두 조심스럽게 사방을 경계하며 뽕나무 밭 사이로나 있는 천을 가고 있었는데, 앞에 가던 무사 한 사람이 갑작이 손을 높이 들며,
「이상한 자가 뽕나무 밑에 있습니다」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3,4인의 무사들이 앞을 나아가 보니, 거기에는 남루한 차림을 한 여워 빠진 행인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종자들을 헤치며 그 곁을 다가선 조순은,
「보아하니 허기에 지친 사람 같으니 난폭한 짓들은 하지 말게」하며 말에서 내려 쓸어져 있는 행인 곁으로 갔다. 만신에 먼지를 덮어 쓴 체 죽은 듯 누워 있던 그 사람은, 자기 앞에 서 있는 재상 조순의 낯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다시 눈을 감고 만다. 조순도 가만이 그 행인의 낯을 보았다. 그 눈썹이며 눈·코 등의 생김새는 그래도 품위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조순은 종자들을 돌아보며,
「이대로 두면 해 지기 전에 죽을 것 같아, 누가 마을까지 가서 죽 한 그릇만 마련해 오게」
하고 이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마을에 갔던 종자는 죽 한 그릇을 가지고 왔다. 조순은 스스로 그 행인의 입에다 한술 두술 그 죽을 떠 넣어 주었다. 거진 다 먹어 갈쯤, 굶주린 사람은 점점 생기를 되찾더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는 죽을 먹여주는 그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자기를 보듬고 음식물을 주고 있는 그 사람이 상민 아닌 고관대작임을 알아차린 행인은 힘써 일어나 앉으며 이마가 땅에 닿도록 배려하면서,
「소인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요」
한다. 조순도,
「정신을 똑 바로 차리도록 하시오. 그대는 지금 굶주려 졸도해 있었소 그런데 상민이 아닌 것 같은 그대가, 굶주려 길가에 쓰러져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요. 어찌된 영문인지 말해 보오」하며 그 연유를 물었다. 그 행인은 숙었던 고개를 들며,
「소인은 원래 3년간이나 서울에서 곡간직이를 해 왔습니다. 최근고향에 계시는 어머님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가던 중, 소인의 불찰로 노자를 모두 도적 맞았습니다. 오늘로서 4일째, 길가의 풀과 나무열매를 따먹으면서 연명해 왔습니다」
하고 이제까지 일어났던 일을 소상히 아뢰었다. 듣고 있던 조순은,
「그와 같은 곤경을 겪으면서 왜 음식을 얻어먹기라도 하지 않았느냐? 굶어 죽기보다야 낫지 않느냐」
고 되물으니,
「비록 대인께서는 우둔한 자라고 욕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소인으로서는 생명부지의 행인들에게 구걸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다시 조순은,
「얻어먹을 수 없었다면 그대가 갖고 있는 보따리 속의 물건이라도 깔아서 굶주림을 면해야 되지 않았겠는가?」
하며 다소 언성을 높였다. 그랬더니 그 행인은,
「이 보재기 속에는 새로 마련한 옷 한벌이 있습니다. 새것이라고는 평생토록 입어 보시지 못한 어머님께 드릴 옷입니다. 차마 그것을 팔 수는 없었고, 설사 판다고 해도 이 초라한 행인의 물건을 사줄 사람이라고는 없었을 것입니다.」

조순은 이 행인의 효심과, 그 깨끗한 마음씨에 감복했다. 그러면서 종자들에게 일러, 가지고 가던 음식물 약간과 두 개의 육포를 주게했다. 그 굶주린 사람은 얻은 음식물은 먹었지만 육포만은 소중히 간직했다. 보고 있던 조순은 이상히 여겨,
「그대는 어찌하여 그 육포는 먹지 않느냐?」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행인은,
「소인은 옛날 서울에서, 어떤 대감님댁 잔치 날에 이런 육포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맛이란 아직도 잇을 수가 없습니다. 이 주신 육포는 고향의 노모에게 드릴 생각입니다.
하고 아뢴다. 조순은 그 효심에 다시 감복하며 육포 한 다발과 노자까지 주어 빨리 고향으로 가게 했다.

이런 일이 있은지 3년이 지났다. 그동안 재상 조순의 명성은 진나라 방방곡곡에 떨쳐졌고, 백성들과도 퍽 친숙해졌다. 이렇게되니 그를 반대하던 사람들로부터 받는 시기와 질투로 그 도를 더해갔다. 더욱이 나이 젊고 사치스럽던 영공도 마침내 이를 간교한 자들의 조순에 대한 비방과 모략질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종전부터 자주 있던 조순의 간언에 싫증을 느껴, 자객을 시켜 그를 없애 버릴려고 했던 일까지 있었다. 조순을 제거할 기회를 포착한 영공은 9월 어떤날 그를 궁성에서 베푸는 잔치에 초대했다. 이러한 음모가 있는 글도 모르는 조순은 궁녀의 뒤를 따라 궁성 깊숙히 마련한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밝아야 할 궁성 뜰에는 불이 밝혀져 있지 않았고, 더욱이 이곳저곳 나무그림자 뒤에는 인적이 마저 있었다. 조순은 애당초, 때아닌 잔치에 의심이 갔지만 그래도 그 초청에 응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피할 도리조차 없다. 온 신경을 눈에다 모아 주위를 살피면서 연회장에 들어갔다. 거기에는 이미 많은 그의 정적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느 때와 다르게 영공도 나와 있었다. 조순은 늦게 온 소행을 깊이 사죄하고 자리에 앉았다.

진찬이 차려진 식탁 주위에는 아름다운 궁녀들도 자리를 같이 하여 옥배에 미주를 따루어 주니, 흥은 점점 무르익어 갔다. 조순은 좌우의 두 미녀가 권하는 술을 조심성 있기 받아 마셨다. 물론 영공을 비롯한 여러 대신들의 술도 마다하지 않고 마셨다. 이러면서 다시 얼마가 지났다. 조순은 용변을 보려고 안내할 궁녀를 앞세우고 자리를 일어났다. 불 빛 희미한 긴 마루를 지나, 막밖으로 나가던 그 궁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영공이 매복시켜 두었던 무사들의 소행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조순은 뒤따르는 수명의 자객들을 피하며 궁문 쪽으로 비호같이 달아났다. 도망치는 자와 뒤쫓는자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중문까지 도망쳐 온 조순은 굳게 닫혀져 있는 빗장에 손을 대었으나 좀체 열리지 않았다. 그때 막 뒤쫓던 자객 가운데 한 사람이 조순의 면전까지 다가왔다.

굳게 닫힌 대문을 뒤에다 두고, 분노에 찬 조순은 칼을 빼들고 앞에 닥아선 그 자객을 쏘아보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면전의 그 무사는 높이 들었던 그 칼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낮은 목소리지만 날카롭게,
「소인은 대감님께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하며 대문을 열어 제쳤다. 뜻밖의 일로 조순은 당황하며,
「그대는 누구인지 이름을 밝혀라」
고 소리쳤다. 그 때는 이미 뒤쫓던 다른 자객들이 가까이 왔다. 촉각을 다투는 위험한 때다. 앞서 온 그 무사는
「소인은 상하의 기인입니다」
하고는 조순을 등으로 밀어내며 다가온 자객에게 칼을 겨누었다.

칼과 칼이 맞부딪치는 소리를 멀리 하며 조순은 단숨에 사경을 벗어났다. 그리하여 그는 그 길로 곧 망명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얼마가지 아니하여, 그의 일족 조천이, 영공과 그를 둘러싼 간신배를 습격하여 도원에서 살해하니, 조순은 다시 돌아 와서 재상의 위에 올랐다.
뽕나무밭에서 허기에 지쳐 쓰러져 있던 그 행인의 덕으로 생명을 구한 조순은, 그 뒤 자기 대신 죽은 그의 명복을 빌어 주었고, 또한 그의 노모를 서울에다 불러들어 후하게 상을 내리고, 자기자신의 친모처럼 공경하며 부양하여, 천수를 끝맺도록 했다. 「설원에서」

박문수암행어사 박문수

 

원본글 : 산림조합 산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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