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900년. 왕건이 궁예를 섬겨, 지금의 충주, 광주, 남양 등지를 경략하고, 906년에는 상주의 사화진에서 견훤의 군대를 격파하고 909년에는 진도 근방까지 공략, 나주를 손아귀에 넣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궁예가 태봉국을 세우는 데에 왕건은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었다, 애꾸눈인 궁예는 나라의 판도가 넓어지고 안정이 되자, 성질이 포악하여지고, 걸핏하면 신하들을 죽이고 귀양보내고, 백성들을 들들볶아 나라가 편할 날이 없었다.
평소에 왕건과 운명을 같이 하며 장래를 도모해 오던 신숭겸, 홍유, 배현경, 복지겸 등 용장이 참다못해,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918년 6월15일에 고려를 세웠다.
고려 임금이 된 왕건은 919년에 도읍을 개성으로 옮기고 선정을 베풀었다.
935년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항복해오고 후백제의 신검이 자기 아버지 견훤을 잡아 가두고 임금자리에 오른 것을 왕건은 견훤을 포섭, 다음해 976년에 신검을 잡아 죽이고 국토를 통일하여, 신라·후백제의 유민들을 무마하고 각기 생업에 종사하게 함으로써 고려의 터전을 굳건히 했다.
이러한 희대의 영웅 왕건에게 후비가 스물 두 사람이었다고 하며, 아들만도 스물 다섯 이라고 한다. 난세에 큰 일을 하자니 중신들의 배반을 막기 위하여 정략결혼을 한 것 같다.
그러한 풍조는 다음 대에도 이어져, 왕건의 맏아들이요 고려 제2대 왕인 혜증도, 형제간의 우의를 두텁게 하기 위하여, 자기 딸을 동생에게 주어 동생을 사위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온다.
태조 왕건이 26년을 다스리고 68세로 세상을 떠나고, 맏아들 혜종이 2년을 다스리고 34세로 세상을 떠나고, 둘째아들 청종이 4년을 다스리고 27세로 세상을 더나고, 세째아들 광종이 26년, 광종의 맏아들 경종이 6년, 태조의 일곱째 아들의 둘째아들 성종이 16년을 다스리고, 고려 제7대 목종 때가 되었다.
목종은 5대 경종의 아들인데, 경종이 죽은 해에 겨우 2살, 그래서 숙부벌 되는 성종이 6대 임금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목종이 등극한 때가 18살의 어린 시절이다.
임금이 어리니까 그 어머니가 천추전에서 수렴청청하게 되었다. 목종의 어머니 즉 경종의 비 현애왕후가 천추전에서 수렴청정을 하니, 그를 천추태후라고 한다.
천추태후는 목종이 등극하기 전에, 홀어미가 되어 먼 친척인 김치양이란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김치양은 남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머리를 깎고 중의 행세로 궁실에 드나들며 골라가며 나쁜 짓만 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천추태후와 가까이 지내는 것이 왕실의 체면도 안됐고 하여 성종이 매를 때려 귀양보내 버렸던 것을 목종이 등극하고 수렴청청하게 된 천추태후가 다른 일 다 제쳐놓고 불러들였다.
실은 성종도 세째아버지 광종의 딸과 살았으니 사촌오누이끼리 결혼한 것이다.
김치양은 태후의 총애를 받는 것을 기회로, 마치 제가 임금이나 되는 양 제멋대로 굴었다. 나라 일에 개입도 하고, 목종을 섬기는 신하들 중에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있으면 목을 베거나 귀양을 보내거나 마음대로 했다.
궁궐 못지 않은 호화 주택을 짓고, 권세에 아첨하는 간신배들을 가까이하면서 사치를 극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왕실의 권위는 희미해지고 공공연히 뇌물이 오고갔다.
김치양에게 아양만 떨면 입신출세는 문제없는 한심스러운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다 그런 썩은 사람만 사는 것은 아니다.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추태에 눈살을 찌푸리고 나라의 장래를 한탄하는 사람도 있었지마는 워낙 천후태후가 왕권을 휘두르는 때라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한편, 목종도 김치양의 권세를 누를 수가 없었다. 원래, 마음이 약하여 어머니에게 큰 소리를 못하고, 김치양의 세력이 하늘을 찔러, 안되겠다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때는 늦어 상말로 빼지도 박지도 못하게 되어 있었다.
한다한 신하들은 거의 김치양에게 숙청 당해, 궁중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김치양의 말 한 마디로 움직이는 심복뿐이었다. 사태가 그 모양이 되어 목종은 속으로는 고민하면서 겉으로는 모르는 체 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김치양의 야망은, 목종 다음에 자기와 천추태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임금 자리에 앉힐 꿈까지 꾸게 되었다. 천추태후도 가담했다.
"태후 마마, 골칫거리가 있사옵니다"
"김 공, 무슨 말이오 ? "
이 무렵, 김치양은 우복야 겸 삼사사 벼슬을 하고 있었다 우복야는 상서성에 소속된 정이품 벼슬로, 이부, 호부, 예부, 병부, 형부, 공부를 관할하던 요직이다. 그리고, 삼사는 종일품은 최고 직위로서 나라의 전곡의 출납회계를 맡아보는 자리다.
그러니까, 요새 말로는 내무부, 재무부, 문교부, 국방부, 법무부, 상공부를 장악하고, 경제기획원을 이끄는 부총리까지 겸한 셈이다.
"대량군이 ‥·‥"
"대량군 ? "
"예."
"그렇군."
목종 다음에 김치양의 아들로 그 뒤를 잇게 하는 데에 대량군이 골칫거리라는 것이다.
목종에게는 소생이 없고, 목종을 제외하면 대량군이 단 하나의, 태조 왕건의 혈통이다.
대량군은 기박한 운명을 띠고 태어났다.
태조의 일곱째 아들 욱의 딸들인 경종 비 헌애왕후와 헌정왕후는 함께 사촌오빠(큰아버지의 아들)인 경종에게 시집가서, 언니인 헌애왕후가 목종을 낳고 경종이 죽자, 친척인 김치양과 배가 맞아 아들을 낳았는데 헌정왕후는 경종이 죽자, 태조의 여덟째 아들(그러니까 자기 아버지의 동생 즉 삼촌숙부)가 배가 맞아 대량군을 낳았다.
이 대목을 지문각 발행, 이홍직 편, 국사대사전에는 '처음에 욱의 딸 황보씨(황보 성은 그의 할머니 성을 따른 것)가 숙부인 욱과 결혼하여 대량군을 낳고 경종 비가 되었다고 되어 있으나, 경종이 죽은 해가 서기 98l년이요, 헌정왕후가 대량군을 낳은 해가 그보다 10년 뒤 인 서기 991년이니까, 그 주장은 잘못이다.
경종이 작은아버지의 두 딸을 아내로 삼았는데, 그것은 그 시대에는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풍습인 것 같다.
태조왕건도 친척인 왕 제공의 딸을 아내로 맞았으며, 왕규의 두 딸도 함께 그의 부인이 됐으며 서흥군으로 사냥 가서 김행파의 큰딸을 첫날 밤에, 작은딸을 다음날 밤에 아내를 삼았다.
성종 10년에 오누이간이면서 사촌형수인 헌정왕후가 삼촌의 아들을 낳자 민망해서, 삼촌을 불러
"왕실의 풍기가 문란해서 창피하니, 숙을 사천현으로 귀양보내니 그리 아오."
하고 귀양보내고 대량군을 궁종에 데려다가 유모를 정하여 키워서 결국 아버지에게 보냈다. 그러니까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헌정왕후는 낳아서는 안될 작은아버지의 아들을 낳으면서 얼마나 속이 썩었는지 산실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그만 이승을 하직했다.
이 대량군이 김치앙과 천추태후에게는 눈의 가시처럼 골칫거리인 것이다.
천추태후로 보면 대량군은 이상한 존재다. 작은아버지의 아들이나 사촌동생이요, 동생의 아들이니 조카가 된다. 또한 존재가 문제가 아니라, 태조의 혈통을 이은 데에 문제가 있다.
목종이 없어진다 해도 대량군이 뒤를 잇게 되어서는 도로아미타불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량군을 중을 만들어 숭교사에 보내 놓고, 암살해버리려고 했다.
한번은 김치양에게서 별식을 보냈다고 음식을 가져온 심부름꾼이
"절간에서 변변한 식음을 드실 기회도 없을 것이니, 몸을 보하시라고 올리는 것입니다." 한다.
언제는 중을 만들어 절간에 가두어놓고, 무슨 정성이 뻐쳤다고 음식을 보낸단 말인가. 영문을 몰라서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그 때 마당에서 두어 마리 개가 놀고 있는 것이 눈에 띄어, 그 음식 한술을 떠서 개들에게 던졌다.
개들은 웬 떡이냐고 달려들어 낼름 먹어 버렸다. 음식을 먹고 난 개들은 그 자리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독이 든 음식을 보낸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목종은 즉시 대량군을 삼각산 신혈사로 옮기게 했다. 서기 1006년의 일이다.
이 사실은 즉시 김치양에게 알려졌다.
(임금이 대량군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더욱 살려두어서는 안된다.)
김치양은 대량군을 해칠 마음을 굳혔다. 이번에는 신혈사로 자객을 보냈다.
대량군이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늙은 중 하나가 뛰어들어온다.
"급히 이곳을 피하십시오."
숨가쁜 소리로 늙은 중이 아뢴다. 늙은 중은 목종의 밀지를 받고 대량군을 보호하고 있는 중이었다.
"왜 그러오?"
"지금 산문에 험상궂은 무사들이 눈에 띄는데, 아마도 김치양이 보낸 자객들인가 보옵니다."
대량군은 기가 박혔다. 어찌 할 바를 모른다.
"이제 와서 어디로 숨는단 말이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아무 생각도 없이 가만히 있는 사람을 어찌하여 이같이 괴롭힌단 말인가.
"소승을 따라 오십시오."
늙은 중은 대량군을 절 한 구석 마룻장을 들고 그 속이 들어가 있게 했다.
대량군이 이 절에 올 때 사태가 심상하지 않음을 짐작한 늙은 중이 미리 마련해둔 곳이다.
잠시 후, 험상궂은 무사들이 들이닥쳤다.
"대량군이 어디 계시냐 ?"
그중 우두머리인 듯한 사람이 거친 목소리로 늙은 중이게 호령한다.
"지금은 이 절에 안 계시오." 늙은 중은 시치미를 뗀다.
"허튼 소리 마라. 이 절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우리를 속이면 재미 없다."
그러나 늙은 중은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다.
"부처님을 모시는 몸이 어찌 거짓말을 하겠소, 산수를 좋아하시는 분이라, 오늘은 어디를 배회하시는지 알 길이 없소이다."
"그래? 얘들아! 이 절을 샅샅이 뒤져라."
"예이."
무사들은 우루루 흩어져 절의 이곳 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대량군을 찾지 못하고 어디서 왔다는 말도 없이 돌아가 버렸다.
한편으로, 김치양은 목종을 없애기 위해서 머리를 짜고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목종이 병이 들어 자연스럽게 죽은 것처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맨 먼저 주술을 써서 죽이는 방법을 택했다.
나무에 목종의 형상을 새겨서 그 가슴을 비수로 찌르면서 주문을 외웠다.
그러다가 천추태후가 아는 바 되었다
"그게 뭐요 ?"
"이게 다 우리의 아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옵니다."
천추태후는 사정을 알고 나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김치양의 꾀에 빠져 아들을 낳고 그 아들로 왕위를 잇게 하자고는 했으나, 막상 목종을 죽이는 일이 실행되려는 것을 보니 언짢았다. 그도 역시 여자였다. 목종도 자기가 낳은 아들 아닌가. 더구나 목종은 자기와 경종 사이에 난 당당한 왕자요. 김치양은 자기의 외척이기는 하나 불의의 관계다.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일말의 양심이 얼굴을 찌푸리게 했다.
"김공도 우둔하오. 상감의 형상을 새겨 놓고 이런 짓을 하다가 누가 보면 어쩌려오 ? 상감을 주살하려 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 아니오?"
하라고 할 수도 없고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일단은 말려야 하는 한 조각 모정이 살아있었던 모양이다. 김치양은, 태후가 목종을 두둔하는 것 같아 못마땅하지만, 사실 들키는 날에는 제가 먼저 죽는다. 태후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태후 마마의 말씀이 옳소이다." 주살의 방법은 일단 중지되었다. 그런다고 김치양이 그들의 계획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김치양은 어디선가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잡아 왔다. 그 고양이를 궁성서북쪽에 있는 십왕사 대들보에 매달아 놓았다. 그리고는 밤이 이슥하여 나타나서는
"이놈아, 네가 바로 상감이다."
하고 고양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고양이는
"야옹."
하는 소리를 냈다.
"옳지, 옳지 됐어. 너는 지금의 임금을 자처하고 있으면 돼. 착하지." 하면서, 품에서 바늘을 꺼내어 고양이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고양이는 아프다고 몸부림을 친다.
"어떠냐, 이제 너는 죽어 가는 거다. 네 몸의 피가 다 흘러서 말라죽어야만 일이 된다. 우리 아기가 너의 뒤를……."
김치양은 미친 사람처럼 주문을 외며 비굴한 웃음을 흘린다.
그 고양이가 말라죽는 것처럼 임금도 말라죽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신은 비단 우리 나라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러나 미신은 미신이지 그대로 되지는 않는다. 고양이는 피를 흘려 말라죽었지마는, 임금 목종은 병 하나 앓지 않고 산야를 달리며 사냥만 다녔다.
이러한 설이 사실이라면, 김치양은 고려 왕조의 성씨를 바꾸려는 엄청난 역모를 꾸미기는 해도, 미신을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보면 하잘 것 없는 졸장부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런 졸장부를 끌어들여 불의의 아들까지 낳은 국모 천추태후도 어지간히 못난 여자다. (계속)
원본글 : 산림조합 산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