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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다시 찾은 애첩

by 양화산장 2018. 6. 30.

옛날부터 글 잘하는 사람은 궁하다는 말이 있거니와 한익도 그 예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한익은 옛날 중국의 문장가로서 풍부한 시재를 가지고 문장대가의 말을 들으면서도 젊어서 한 때는 몹시 곤궁하게 지냈다. 그래서 과거에 오르기 전까지는 일개 초라한 서생으로 불우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한익에게는 단 하나인 지기의 벗 이씨가 있었다. 이씨는 재산이 거부요 성질이 호협해서 돈을 아끼지 않고 사람의 재주를 아껴주는 사람이었다.
이씨에게는 사랑하는 첩 유씨가 있었다. 얼굴이 절색이요, 노래 잘하고 춤 잘추고 시도 지었다.
이씨는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에 별장을 지어 놓고 거기서 유씨와 더불어 세월을 보내며 한익의 재주를 사랑하여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시를 읊곤 했다
나중에는 서로 만나기에 편케 하기 위해서 별장 곁에다 조그마하고 아담스러운 초당을 지어 놓고 한익으로 하여금 그곳에 거치하도록 하고 생활비를 대어 주었다. 그렇게까지 되고 보니 두 사람의 사이는 무척 친밀해졌다.
한익은 비록 궁하게는 지낼망정 그의 이름은 널리 세상에 알려져 찾아오는 사람이 많고 찾아오는 사람은 대개가 당대의 명사들이었다.
이씨의 첩 유씨는 어느때나 한익의 거동을 유심히 살피고 그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까지도 살펴보니 대개가 당대의 명사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유씨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한씨는 결코 언제까지나 빈궁한 속에서 일생을 마칠 사람이 아니로구나!
유씨는 한익을 연모하는 정이 날로 깊어 갔다. 그래서는 안될줄 알면서도 어쩔수 없었다.
이씨는 한익을 위하는 일이라면 아까운 것이 없었다. 얼마후에 이씨는 첩 유씨가 한익에게 마음을 두고 지내는 것을 눈치채고 이것을 어떻게든지 제소원대로 성사를 시켜 유씨의 소원도 들어주고 한익도 고독을 면하게 해주리라 생각했다

어느 날 이씨는 첩 유씨더러 술상을 걸게 차리고 오늘은 특별히 몸단장을 곱게 하라고 한 후 한익을 청하여 술을 마시다가 유씨를 불러내어 술을 치라고 했다.
한익은 뜻밖에도 주인이 애첩을 불러내어 술을 치라 하는 바람에 황송하고 불안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둘이 다 술이 어지간히 취했을 때 이씨는 문득 한익을 보고 유씨를 가리키며 말했다.
『유씨의 얼굴이 과히 추하지 않고 한공의 문장이 또한 당세에 돋보이고 하니 이것은 만나기 어려운 좋은 짝이라 하겠읍니다. 내 이제 유씨를 한공에게 돌려보내어 재사 가인으로하여금 위양도를 만들어 보고자 하니 사양치는 마시오』
한익은 천만뜻밖에 이런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받았던 술잔을 상위에 놓고 자리를 피해 앉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랫동안 싫다 않고 의식을 주선해 주신 은혜만도 태산 같은 데 어찌 감히 은인의 사랑을 앗을 수가 있읍니까. 그것만은 당치 않은 말씀이십니다.』
『아니오, 내 이미 마음속에 작정한 일이니 사양치 마시오.』
『아니올시다. 그것만은 죽어도 못하겠읍니다. 만일 그렇다면 세상사람이 나를 어떠한 사람으로 보겠읍니까』『내가 좋아서 하는 일 세상사람이 말할 까닭이 어디 있읍니까. 사양치 마십시오.』
이씨는 한익이 굳이 사양함에도 불구하고 유씨를 시켜 한익 앞에 큰절을 하게 하고 일렀다.
『그대는 오늘밤부터 한공의 첩이요 나와는 남이 되는 것이다 정성껏 받들어 드리게.』
놀란 것은 비단 한익 뿐이 아니라 유씨도 천만뜻밖에 남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처음에는 농담인가 싶었으나 남편의 태도를 보니 농담이 아니라 진정이었다. 이것은 뜻밖의 일이기는 하나 유씨로서는 은근히 바라던 일이었다.

유씨는 이씨가 시키는 대로 한익을 남편으로 모셨다. 한익은 유씨마저 순순히 말을 듣는 것을 보고 어찌된 셈인지 까닭을 알 수가 없어 하는 대로 맡겨두었다.
이씨는 한익을 상좌에 앉히고 다시 술을 부어 취하도록 마신 후 화촉독방으로 한익과 유씨를 인도했다.
이튿날, 이씨는 돈 이십만량과 유씨가 쓰던 방안의 물건을 실어서 유씨와 함께 한익의 처소로 보냈다.
한익과 유씨는 재사와 가인이 서로 만났으니 흡나 고기가 물을 얻은 듯 피차가 만족하고 피차가 사랑하여 정은 날로 깊어만 갔다.
꿈같이 달콤한 사랑 속에 일년이 지나간 후 한익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어느 날 유씨는 한익에게 권했다.
『사람이 영화를 보면 혼자만 볼께 아니라 집안 일가 친척에게 까지 그 영화가 미쳐야 할 것 아닙니까. 상공께서 이제 귀히 되시고도 첩과 같은 일개 천한 계집으로 인연해서 고향에 계신 부인을 돌보지 않으신다면 세상에서 첩을 어떠한 계집으로 알겠읍니까. 이제는 뜻을 이루셨으니 고향에 돌아가셔서 노친께 영화도 보여드리고 부인도 위로해 드리시오. 첩은 상공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한 몸이 먹고살아 갈수 있으니 첩에 대한 염려는 마시고 빨리 다녀오십시오.』
한익은 유씨의 말에 깊이 감동되어 곧 돌아오기를 약속하고 행장을 챙겨가지고 고향인 청하현으로 돌아갔다. 한익은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와 보니 여러가지 사정이 얼키어 졸연히 일어나지를 못하고 어언 일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유씨는 지녔던 재물들을 다 팔아버리고 살림도구며 물건을 팔아 근근히 생활을 해 가면서 매일 같이 낭군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그때 마침 국내에 변란이 일어나 인심이 흉흉하고 국내가 소란하더니 변란은 차차 번져서 필경은 서울까지 반란군에게 점령을 당하고 말았다. 이 지경이 되고 보니 반란군의 약탈은 이루 표현할 수 없었다.
여자는 강간을 당하고 재산은 약탈당했으며 장정은 징발을 당하는 등 일대 수라장을 이루었다.
유씨로 말하면 그 중에도 특별히 얼굴이 예쁘고 이름이 높은 여자라 더우기 신변이 위태했다.
가만히 있다가는 반드시 화를 면치 못할 줄 알고 유씨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어 절간에 숨었다.

이때 평려절도사로 있던 후희일장군이 지청(한익의 고향이 소속된 곳) 절도사로 전근이 되어 부임 즉시로 한익의 이름을 듣고 곧 청해다가 기실로 삼았다.
한익은 서울이 반란군에 짓밟힌 소식을 듣고는 유씨가 어찌되었는지 몰라 밤이나 낮이나 유씨의 생각으로 침식을 잊을 지경이었다
얼마 후 서울이 수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서울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매인 몸이라 뜻대로 못하였다. 그래서 비단 주머니에 시 두귀절을 써넣고 많은 돈을 싸서 일부러 사람을 서울로 보내어 유씨를 찾아 전하게 했다.
한익의 부탁을 받아 서울로 올라온 하인은 전란을 격고 황폐하기 짝이 없는 서울에 들어갔다.
몇달 동안을 두고 찾은 결과 겨우 유씨가 절간에 숨어 있는 것을 알고는 한익의 부탁을 전했다.
유씨는 오매불망하던 낭군의 소식을 받고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리었다. 한익이 보내온 비단주머니를 열고 보니 그 속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들어있었다.
장대버들아! 장대버들아! 옛날 푸르고 싱싱하던 그 모습 그대로 지니고 있는가. 비록 길고 푸른 가지 예와 같이 드리우고 있다해도, 아마도 딴 사람의 손에 꺽기고야 말았으리(장대는 버들로 유명한 곳)
한익은 유씨를 장대버들에 비해 가지고, 자신의 뜻을 붙여 말한 것이다.
이 글을 받은 유씨는 슬픈 정을 이길수 없어 눈물을 흘리며 회답했다.
버들가지 꽃다운 시절, 이별이 한이로다. 한 잎사귀 바람에 불려 가을소식 전해오니, 비록 그대가 온들 무엇하러 꺾을 소냐. 벌써 늙고 쇠잔하여 보잘것없다.
이것은 유씨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치은 시다. 젊었을 시절에는 사랑해줄 사람도 많더니 이제는 나이도 많고 더우기 머리를 깎고 중까지 되어 가을을 맞이했으니 임이 오신들 무슨 애정을 느끼겠느냐는 뜻으로 자신의 비참한 처지와 심경을 말하여 한익의 의심을 풀어 주려는 것이었다.
유씨는 이 글을 통하여 하인에게 주어 돌려보냈다.

그 후, 유씨는 반란이 종식되고 장안이 수복된 후, 뜻 아니한 장군 사타리에게 강제로 끌려가 그의 첩이 되었다. 사타리는 일개 변방에 있던 장수로서 장안을 수복할 때 선봉으로 나서서 반적을 격파하고 큰공을 세워 황제의 총애가 비할때 없어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
사타리는 예전부터 유씨의 예쁜 소문을 듣고 서울에 들어오자마자 불같은 야심이 생겨, 유씨를 기어코 찾아내어 강제로 끌어다가 머리를 기르고 첩으로 삼았다.
유씨는 이날부터 슬프고 분함 속에서 그날 그날을 보내며 몇 번이나 자살을 하려고 계획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치청 절도사 후희일장군이 좌복야로 승진이 되어 서울로 들어오게 되니 한익도 그와 함께 서울로 따라오게 되었다.
한익은 서울에 들어오는 즉시로 유씨를 찾았다.
그러나 유씨의 종적은 묘연했다.
유씨를 잃어버린 한익은 만사에 뜻이 없었다.
슬픈 마음을 억제할 수 없어 공연히 미친 사람같이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울분한 정희를 흩어버렸다.
하루는 우연히 용수강이란 곳을 지나다가 보니 웬 조그마한 꽃수레 하나가 지나가는데, 그 뒤에는 예쁘장한 계집애 하인 둘이 따랐다.
한익은 무심코 그 뒤를 따라가니 문득 수레 속에서 여자가 말을 건냈다.
『뒤에 오시는 분이 한원외(과거한 사람이게 쓰는 존칭)가 아니십니까 첩은 유씨입니다』
말이 끝나자 수레 안에서 오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 뜻밖의 일에 한익은 멍하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유씨는 다시 말했다.
『이 몸은 벌써 장군 사타리에게 실절을 했으니 낭군을 뵈올 면목이 없습니다. 만일 옛 정을 잊지 않으셨다면 내일 아침 도정리 어귀에서 기다려주십시오』
말을 마친 후, 수레는 그대로 달려가 버렸다.

한익은 수레의 뒤를 바라보며 넋을 잃은 사람처럼 서있었다.
수레가 보이지 않게 되자 긴 한숨을 내쉬고 힘없는 발길을 옮겨 처소로 돌아왔다.
한익은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유씨를 다시 내 품안에 돌려올 방법은 없었다.
권세가 불꽃같은 사타리의 수중에 있는 유씨를 누가 감히 말이나 하겠는가.
한익은 이튿날 아침 일찌기 도정리 어귀에 가서 기다리고 있자니 과연 어제 보던 그 수레가 왔다. 한익이 서있는 것을 보고 유씨는 하얀 옥으로 만든 합에 향고를 가득히 넣어 비단 수건에 싸서 던지며 말했다.
『이것이 영결이니 정이나 잊지 말아주세요』
유씨는 수레를 돌이켜 오던 길로 되돌아 가버렸다.
한익은 말 한마디 못해 보고 우두커니 서서 뒷그림자만 바라보다가 사관으로 돌아왔다. 이날 마침 치청장군의 영전을 축하할겸 친목을 도모하는 의미에서 모임이 있으니 꼭 와달라는 간곡한 청첩이 왔다.
한익이 무슨 정황에 참석할 생각이 있겠는가마는 모처럼 모이는 자리에 아니갈 수도 없어 마지못해 그 자리에 나아가기는 했으나 얼굴빛이 참담하고 말소리까지도 힘이 없었다.
평소에 쾌활하던 한익이 의기소침한 것을 보고 여러 사람은 까닭을 물었다.
그러나 한익은 말을 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라 묻는 말에 한마디도 대답을 아니했다.

이 자리에는 허준이라는 장교도 섞여있었다. 재간 있고 담대하기로 유명한 청년장교였다.
허준은 평소에 한익을 존경하고 숭배하는 사람이었다. 허준은 한익의 기색이 좋지 않자 그 까닭을 물었으나 대답치 않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는 일이 있지 않은가 생각하면서 한익의 앞으로 바싹 대어들며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마도 심장치 않은 일인듯 싶은데 제게 말씀을 해주십시오』
한익은 허준이 캐묻는 바람에 마지못해 유씨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말하게 되었다.
곁에서 이야기를 들은 여러 사람들은 한익을 위로 할 뿐 상대자가 사타리고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청년장교 허준은 한익에게 유씨에게 편지 한장만 써주면 당장 유씨를 데려오겠다고 장담을 하고 나섰다. 여러 사람은 허준의 하는 짓을 보려고 한익에게 써주라고 권했다.
한익은 여러 사람의 권에 못이겨 몇자를 써서 주니 허준은 편지를 받아 품속에 넣고는 군복을 갈아입고 말 두필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한편 허준은 바로 사타리집 근처에 와서 사타리의 동정을 살폈다.
얼마 후에 사타리가 집에서 나왔다. 허준은 사타리가 집에서 나온후 잠시동안을 더 기다려 그가 집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갔을 것이 짐작될지음 해서 말을 달려 사타리의 집 대문을 박고 바로 안마당으로 들어서며 외쳤다.
『장군께서 급중독이 되어 위독하시니 부인께서는 빨리 나오시오』
이 말을 들은 집안 사람들은 하인들까지도 어찌할 줄을 모르고 수족이 황망했다. 허준은 바로 이때를 타서 안방 대청으로 올라서는 길로 한익의 편지를 유씨에게 보인 다음 유씨를 재촉하여 말에 태운 후 채찍질을 하여 돌아왔다.
이때 여러 사람은 술을 마시기보다 허준의 일이 궁금해서 술잔들을 멈추고 기다리고 있었다. 벼란간 문밖에 말굽소리가 요만하더니 허준이 유씨와 함께 말을 달려 들어오지 않는가 누가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우뢰같은 박수 소리가 일어나며, 장하다는 갈채가 비오듯했다.
말에서 내린 유씨는 한익의 품안에 안기더니 방성 통곡을 한다. 여러 사람은 유씨와 한익을 위해 몇 잔의 축배를 나누었다.
한익은 우선 유씨가 품안에 돌아와 기쁘기는 했으나 상대자가 당시에 제일 가는 사타리고 보니 이 일이 무사히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사타리의 솜씨에 무슨 화를 당할지 뒷일이 무서웠던 것이다.

한익과 허준은 며칠이 지난 후, 정승 후회일에게 유씨에 대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드니 정승은 깜짝 놀라면서 허준의 등을 치며 말했다.
『이것은 내가 젊었을 때 한번 해본 일인데 자네가 감히 했네 그려! 염려말게 내 무사하도록 만들어 줄테니』
이튿날, 정승 후회일은 황제 앞에 나아가 사타리가 세력을 믿고 횡포하게도 같은 조정에 있는 조신의 애첩을 강탈한 것을 아뢰고 유씨의 억울함과 한익의 애처로운 사정을 아뢰었다.
황제께서는 허준의 용기를 크게 칭찬하시며 유씨는 한익에게 돌려보내고 사타리는 다른 곳에 장가들라는 어지를 내리셨다. 허준에게 상을 내린 것은 물론이요 사타리에게도 혼수를 내리시어 일을 원만하게 해결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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