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78 옛 이야기 - 꼬마 현초동(때는 이조 문종 때) 해마다 열리는 과거에서 전국 방방곡곡의 선비들이 모여 시제를 앞에 놓고 훌륭한 문장을 써내려고 온갖 안간 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윽고 얼마만에 답안지를 쓴 사람들이 하나 둘 퇴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험이 끝난 것이다. 선비들이 다 퇴장하고 나서 한참만에 호명관이 『장원에 현초동이요』하고 외쳤다. 이 때 사람들은 저마다 장원으로 호명된 사람을 찾는양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니 저럴수가?』 『저건 꼬마가 아니야?』 『누가 아니래 글쎄 ?』 저마다 놀라움에 찬 말들이 장내에 가득찼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장원으로 뽑힌 사람은 이제 불과 열살이 되었을까 말까 한 코흘리개 정도의 애숭이었기 때문이다. 호명관을 비롯한 참관인들이나 밀양부사마저 이 사실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어쨌든 장원은 결정된.. 2019. 4. 13. 역사속의 이야기 - 춘선과 유신 上 때는 신라 제26대 진평왕 34년의 옛날로 올라간다. 따뜻한 봄 실실이 흘러내리는 가는 비가 개인 지도 이미 오래다. 해마다 제 때를 잊지 않고 돌아오는 대자연의 봄이 그 어느 곳이라 다르랴마는 해마다 풍년들어 나날이 기름져가는 서라벌 이 땅에 골고루 찾아온 봄바람은 태평연월을 노래하는 이 나라 백성들의 흥을 더 한층 돋구어줌에 족하였다. 이 때 어깨가 으쓱으쓱 젊음의 몸을 가슴 벅차게 느끼는 청년 세 사람은 미리 약속이나 한 듯이 말머리를 돌리어 알천강 푸른 언덕으로 기분 좋게 휘파람을 불면서 걸어 나갔다. 강변 버드나무 가지가 나날이 푸르러가는 언덕 위에 말을 세우고 삥 둘러선 청년 세 사람은 모두 칼을 차고 화살을 메고 채찍을 들고 신라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화랑들의 늠름한 기품이었다. 이따금 불.. 2018. 11. 29. 옛 이야기(고전) - 선비 송인수 사람이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면서 어떻게 하면 착하고 훌륭하게 살 수 있는가에 신경을 쓰게 된다. 멀리 이씨 조선 5백년 동안에도 많은 선비들은 겸허하고 착실하게 살아갈려고 몸부림을 쳤다. 선비라고 하면 한마디로 권력과 금력에 때묻지 않고 주색에 방황하지 말 것 등이 하나의 신조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선비들의 규율이 얼마나 엄했는지 여기에 십불고생을 적어보기로 한다. 1. 집을 돌아보지 말 것. 2. 재산을 탐내지 말 것. 3. 먹고 살아갈 것을 걱정하지 말 것. 4. 자식들을 돌아보지 말 것. 5. 가문을 돌아보지 말 것. 6. 친구를 돌아보지 말 것. 7. 여자를 좋아하지 말 것. 8. 술을 즐겨 마시지 말 것. 9. 벼슬을 탐내지 말 것. 10. 풍류를 즐기지 말 것. 등등이었다. 그.. 2018. 11. 26. 역사속의 이야기 - 김유신 지 신라의 귀족들과 연결하지 않으면 출세의 길이 막히어 일생을 허송하게 된다. 때마침 신라에는 당나라에서 들어온 축국이 성행하였다. 바로 선덕여왕 초년에 김유신은 신라의 진골 김춘추와 친근할려고 하였다. 정월 보름날이 되면 모두 약식을 해먹고 이 날 하루를 즐거웁게 논다. 김유신은 이날 김춘추를 청해다놓고 자기 집 근처 넓은 마당에서 축국을 시작하였다. 이 축국은 농주하는 놀음이라고 하였다. 수족을 다 놀리며 차는 경기이다. 한창 재미있게 놀 때 김유신이 마음속에 큰 포부를 품었는지 김춘추의 당의 옷자락을 밟았다. 옷은 소리를 내며 뜯어졌다. 그래도 김춘추는 모르고 있었다. 한참 놀고 난 뒤에 김춘추가 가려고 할 때 소매자락이 터진 것을 보고 『너무 재미있게 노느라고 옷이 터진줄도 모르고 놀았네.』 하고.. 2018. 11. 25. 옛 이야기(고전) - 석상의 화신 下 『떽기 무슨 말버릇이 그렇담? 알고 싶다면 좀 더 정중하게 물어야지!』 『예! 그럼 잘못했읍니다. 좀 알려주세요! 호호홋!』 『아니 아직 주인댁이 날 덜 믿는 것 같아! 그럼 더 믿도록 해주지!』 『어떻게요?』 『맞으면 맞고 틀리면 틀린다구 하라구 주인댁은 남편 몰래 부엌 밑바닥에다 항아리를 묻고 돈을 감춰둔게 있지?』 『네?』 주모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남편조차 몰래 숨겨둔 돈을 알아내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렇다고 막상 실토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렇다고 치고요! 또요!』하고 얼버무리자 『그래도 솔직하지 못하군! 그럼 그 돈이 전부 얼마나 되나 알겠는가? 아마 주인댁도 나만큼은 모를꺼요!』하니 주모는 얼결에 『글쎄 저도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했다. 그러자 노인은 『그렇게 나와.. 2018. 11. 23. 옛 이야기(고전) - 석상의 화신 上 안동고을에 찢어지게 못사는 모녀가 살았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자리에 누운지 여러 해가 되니 집안 꼴이야 말할 수 없게 되고 관가에서 삼천 량이나 되는 돈을 꾸어 빚방석에 앉게 되었다. 어린 달래가 남의 집 품팔이를 하면서 단 얼마라도 어머니의 약값에 보충해 보려고 애를 쓰는 것이었지만 큰 보탬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얼마 전의 일이다. 갑자기 달래네 고을에 나라에서 보낸 암행어사가 내려온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암행어사라면 탐관오리를 징계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 고을에서 일어나는 대소 송사와 재정문제 등을 다스렸는데 안동부사는 암행어사가 내려 온다는 말에 즉시로 달래네 집에 군졸을 보내어 삼천 냥의 빚을 아무날 아무시까지 갚도록 하라고 전갈을 했던 것이다. 당시 포흠 .. 2018. 11. 22. 찾는 차사는 살아 돌아가지를 못하였다.(옛 이야기(고전) - 함흥차사) 저 남산에 가 돌을 깨니 정이 남음이 없네 정도전과 남은이 방원의 손에 죽을 것을 미리 예언한 동요로서 남산은 남은을 가리킨 것이며 정은 정도전을 가리켰고 남음이 없다는 남은을 뜻했다 전해진다. 한양에서 이 동요가 불리울 지음의 이야기다. 여기는 함흥 태상왕 행재소이다. 찾는 차사는 살아 돌아가지를 못하였다. 한사람의 차사가 왔다. 「태상께 금상으로 부터의 문안이오!」 「문안이라고? 세자를 없앤 것이……뉘없느냐? 저놈을 당장에 참하여라!」 태상의 말이 떨어질 겨를없이 차사는 달려온 근신의 칼에 쓰러졌다. 「금상으로부터 태상께 문안이요!」하고 행재소 뜰에 부복하였다. 「이 고얀것! 방석, 방번, 그리고 내사위를 죽인것이! 내 아직 활을 잡을 힘이 있거늘!」 명궁 태상의 손에 활이 잡히자, 차사는 퍽하고 땅.. 2018. 11. 19. 옛 이야기(고전) - 가난한 선비 왕세자 탄생의 축하연이 벌어졌다. 명활성 내에 있는 궁중은 물론이요 서라벌에는 경축놀이가 계속되었다. 특히 왕가와 귀족들은 음식을 만판지게 차려놓고 춤과 노래를 열흘동안 벌여 왕세자의 탄생을 경축하였다. 신라 20대 자비왕은 용상에 도사리고 앉아 신하들의 배알을 받고 희희낙낙하였다. 왕세자가 탄생한지 십오일이 되던 날 상대등(높은 대신) 홍인관이 어전에 읍하여 아뢰었다. 『상감……』 『상대등 무슨 말인지.』 『상감 왕세자 탄생을 기념하여 신라 방방곡곡에서 기쁨과 노래 소리가 드높게 들리웁니다. 백성들은 상감의 성덕을 찬양하옵고 신라의 부강을 노래하고 있사옵니다. 이처럼 즐거운 경사가 또 어디 있사오리까. 하지만 우리 신라는 문화적으로 훌륭하오나 한가지 빠진 것이 있사옵니다. 그것은 마치 옥에 티와 같사옵.. 2018. 11. 18. 옛 이야기(고전) - 왕건의 호사 / 농사꾼과 벼슬 고려 태조 왕건은 개성근처 예성강을 중심으로 화가위국(化家爲國)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왕융(王降)이 처음으로 이 부근의 호족(豪族)으로서 큰 뜻을 품었다. 소년 왕건은 아버지를 따라 예성강에서 수군에 대한 수련을 많이 하였으며 나이 二十세 되는 때는 벌써 궁예가 강성하여 여기까지 그의 세력을 미치게 되었다. 이때 왕건의 아버지 왕융은 아들을 데리고 궁예의 부하로 들어가 궁예왕의 충실한 일군이 될 것을 맹세하였다. 한 번 궁예의 부하가 되자 이제부터는 그 부근을 점령하여 궁예왕의 환심을 사기로 하였다. 우신 장군이란 신분으로 개성근처를 점령하고 정주로 내려가 행군하던 중 여름날이 되어 큰 버드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마침 그 앞에 내가 있어 맑은 물이 흘러 내려가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살벌.. 2018. 11. 10. 옛 이야기(고전) - 임금님의 현몽 전라도 장성 땅에 김춘영이라는 착실한 선비가 있었다. 십년을 두고 공부에만 골몰하던 그는 과거를 보인다는 소식이 전하자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형세가 간구한 그는 나귀를 빌려 탈 형편도 못되었기에 십여일을 두고 걸어가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은진 땅에 이르렀을 무렵이다. 별안간 검은 구름이 몰리더니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김춘영은 비를 피할 곳이 없나 하고 사방을 돌아보았으나, 들판 가운데는 나무 그늘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이거 큰일 났구나.』 삽시간에 퍼붓는 비로 하여 옷은 물에 빠진듯 젖고 말았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이거 어떻게 하나.』 그는 다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천행으로 건너편에 미륵당이 우뚝서 있는 것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2018. 11. 9. 옛 이야기(고전) - 선견지명 고려말 정지성이란 벼슬 높은 대감이 나이 많아지자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가 아들손자들과 농사를 지으며 말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그 이웃에 김가 성 쓰는 농부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이 농부 어찌된 셈인지 나랏님 이상으로 정 대감의 덕망을 흠모하고 있어 이 하늘아래 정 대감님 같은 어른은 없다고 여기고 농사일에도 이골이 난 처지였건만 정 대감의 본을 받아 대감이 밭을 갈면 자기도 본따서 밭을 갈았고 대감이 논을 갈면 자기도 논을 갈곤 하여 매사를 꼭 대감이 하는대로만 몇해를 두고 하였다. 어쨌든간에 김가 성 쓰는 농부는 이렇게 해서 다른 때와 달리 많은 수확을 얻어 한뼘 만큼의 논은 이제 제법 그전의 두배 정도로 불어나게끔 되어 집안 살림이 제법 기름기가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대감.. 2018. 9. 6. 옛 이야기(고전) - 양영대군 부왕의 뜻을 받들기 위하여 모든 영화를 버렸던 양녕대군은 이제는 방탕이란 것이 그에게 있어 버리지 못하는 고질이 되고 말았다. 술과 계집, 그리고 명승을 찾아 유람한다는 것이 최대의 환락이자, 그의 생활의 전부였다. 그러한 그가 오래 전부터 벼르기만 하던 서경 유람의 길을 기어이 떠나게 된 것은, 특히 아우님 왕의 간곡한 부탁과 윤허를 얻고 나서의 일이었다. 양명이 출발에 앞서 고별차 세종께 배알하였을 때이다. 『이번 서경 유람을 윤허 합시어 감격하옵니다』하고 왕에게 아뢰었더니, 세종은 우애에 넘치는 말씀으로 『서경은 색향이라 하옵는데, 혹시 형님께서 건강이라도 해치게 되시지나 않사을지요. 부디 조심하셔서 이번 길에는 주색을 통히 금하시기 바라나이다.』하였다. 이 말은 단지 아우가 형에 대한 걱정에서만이.. 2018. 7. 29. 옛 이야기(고전) - 애란의 비련 봄이라기 보다는 아직도 늦은 겨울이었다. 신라 서울의 서산인 선도산 동녘에 자리 잡은 애란과 도열의 집이 있는 동네에서 멀리 남산을 바라보면 양지가 바르지 못한 골자기에는 아직도 허옇게 눈이 쌓여 있었다. 『삼짓날이 인제 며칠 남았지?』 애란이가 가야금을 고르다가 손이 시려서 「호호」입김으로 녹히며 옆에서 노래를 부르던 도열에게 물었다. 『얼마 안남았어.』 『며칠?』 『가만 있거라. 응, 열흘밖엔 남지 않았구나.』 『열흘! 그럼 다 됐네?』 『그래 얼마 남잖았으니까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되겠다. 자 어서 타라.』 애란은 도열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도 가야금을 쉬 타려고는 하지 않았다. 『애란아! 너희 아버지가 오시면 또 야단 마지려구…어서 타』 도열이 애란을 재촉했다. 『너는 그렇게 손을 바지춤에 .. 2018. 7. 28. 옛 이야기(고전) - 함흥차사 저 남산에 가 돌을 깨니 정이 남음이 없네 정도전과 남은이 방원의 손에 죽을 것을 미리 예언한 동요로서 남산은 남은을 가리킨 것이며 정은 정도전을 가리켰고 남음이 없다는 남은을 뜻했다 전해진다. 한양에서 이 동요가 불리울 지음의 이야기다. 여기는 함흥 태상왕 행재소이다. 찾는 차사는 살아 돌아가지를 못하였다. 한사람의 차사가 왔다. 「태상께 금상으로 부터의 문안이오!」 「문안이라고? 세자를 없앤 것이……뉘없느냐? 저놈을 당장에 참하여라!」 태상의 말이 떨어질 겨를없이 차사는 달려온 근신의 칼에 쓰러졌다. 「금상으로부터 태상께 문안이요!」하고 행재소 뜰에 부복하였다. 「이 고얀것! 방석, 방번, 그리고 내사위를 죽인것이! 내 아직 활을 잡을 힘이 있거늘!」 명궁 태상의 손에 활이 잡히자, 차사는 퍽하고 땅.. 2018. 7. 27. 옛 이야기(고전) - 가난한 선비 왕세자 탄생의 축하연이 벌어졌다. 명활성 내에 있는 궁중은 물론이요 서라벌에는 경축놀이가 계속되었다. 특히 왕가와 귀족들은 음식을 만판지게 차려놓고 춤과 노래를 열흘동안 벌여 왕세자의 탄생을 경축하였다. 신라 20대 자비왕은 용상에 도사리고 앉아 신하들의 배알을 받고 희희낙낙하였다. 왕세자가 탄생한지 십오일이 되던 날 상대등(높은 대신) 홍인관이 어전에 읍하여 아뢰었다. 『상감……』 『상대등 무슨 말인지.』 『상감 왕세자 탄생을 기념하여 신라 방방곡곡에서 기쁨과 노래 소리가 드높게 들리웁니다. 백성들은 상감의 성덕을 찬양하옵고 신라의 부강을 노래하고 있사옵니다. 이처럼 즐거운 경사가 또 어디 있사오리까. 하지만 우리 신라는 문화적으로 훌륭하오나 한가지 빠진 것이 있사옵니다. 그것은 마치 옥에 티와 같사옵.. 2018. 7. 26. 옛 이야기(고전) - 왕건의 호사 / 농사꾼과 벼슬 고려 태조 왕건은 개성근처 예성강을 중심으로 화가위국(化家爲國)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왕융(王降)이 처음으로 이 부근의 호족(豪族)으로서 큰 뜻을 품었다. 소년 왕건은 아버지를 따라 예성강에서 수군에 대한 수련을 많이 하였으며 나이 二十세 되는 때는 벌써 궁예가 강성하여 여기까지 그의 세력을 미치게 되었다. 이때 왕건의 아버지 왕융은 아들을 데리고 궁예의 부하로 들어가 궁예왕의 충실한 일군이 될 것을 맹세하였다. 한 번 궁예의 부하가 되자 이제부터는 그 부근을 점령하여 궁예왕의 환심을 사기로 하였다. 우신 장군이란 신분으로 개성근처를 점령하고 정주로 내려가 행군하던 중 여름날이 되어 큰 버드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마침 그 앞에 내가 있어 맑은 물이 흘러 내려가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살벌.. 2018. 7. 24. 옛 이야기(고전) - 임금님의 현몽 전라도 장성 땅에 김춘영이라는 착실한 선비가 있었다. 십년을 두고 공부에만 골몰하던 그는 과거를 보인다는 소식이 전하자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형세가 간구한 그는 나귀를 빌려 탈 형편도 못되었기에 십여일을 두고 걸어가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은진 땅에 이르렀을 무렵이다. 별안간 검은 구름이 몰리더니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김춘영은 비를 피할 곳이 없나 하고 사방을 돌아보았으나, 들판 가운데는 나무 그늘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이거 큰일 났구나.』 삽시간에 퍼붓는 비로 하여 옷은 물에 빠진듯 젖고 말았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이거 어떻게 하나.』 그는 다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천행으로 건너편에 미륵당이 우뚝서 있는 것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2018. 7. 23. 옛 이야기(고전) - 선견지명 고려말 정지성이란 벼슬 높은 대감이 나이 많아지자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가 아들손자들과 농사를 지으며 말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그 이웃에 김가 성 쓰는 농부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이 농부 어찌된 셈인지 나랏님 이상으로 정 대감의 덕망을 흠모하고 있어 이 하늘아래 정 대감님 같은 어른은 없다고 여기고 농사일에도 이골이 난 처지였건만 정 대감의 본을 받아 대감이 밭을 갈면 자기도 본따서 밭을 갈았고 대감이 논을 갈면 자기도 논을 갈곤 하여 매사를 꼭 대감이 하는대로만 몇해를 두고 하였다. 어쨌든간에 김가 성 쓰는 농부는 이렇게 해서 다른 때와 달리 많은 수확을 얻어 한뼘 만큼의 논은 이제 제법 그전의 두배 정도로 불어나게끔 되어 집안 살림이 제법 기름기가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대감.. 2018. 7. 22. 옛 이야기(고전) - 적선지가 (하) 지난 줄거리 박시양이라는 선비는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노모를 모시고 끼니 연명도 어렵게 살았다. 그리하여 옛날 자기 집에서 부리던 종들을 찾아가서 종문권과 교환하여 얻은 필목과 그리고 대대로 물려받은 그림 한폭을 마지막으로 내다 판 돈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이 사람으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막한 사정을 보게 되는 박시양은 갖인 필목과 은자를 모두 주어 그들을 구하고 귀향 길을 재촉하는데 은혜을 입은 자가 감격하여 박시양의 옷소매를 붙든다. 그러나 이 모녀는 꼭 죽게 된 목숨을 태산 같은 은혜을 입어 살아났으며 모녀가 은인을 따라가서 하다 못해 밥이라도 끓이고 심부름이라도 해드려야 겠다고 보따리를 꾸려 따라나서는 것이다. 박생은 집안 형편이 몹시 가난하여 모친과 단 두 식구건만 오히려 밥을 굶는 날이 허.. 2018. 7. 15. 옛 이야기(고전) - 적선지가 (상) 이조 효종때의 일이었다. 충청도 조치원에 박시양이라고 하는 선비가 살았다. 일찍이 부친이 돌아가시고 편모슬하에서 십년 동안이나 글만 읽으며 지나보니 어느듯 얼마되지 않는 재산을 모두 곶감 빼어먹듯 써버리게 되어 늙은 모친을 모시고 그날그날 먹고살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해 겨울식량이 떨어져서 온종일 꼬막 굶고 있다가 저녁때가 되어서야 모친이 하인으로 하여금 자기가 시집올 때 끼고 왔던 금가락지를 팔아오게 하여 비로서 저녁밥을 지어먹게 되었다. 저녁밥을 마치고 모친은 문득 의상 속에서 문서 보따리를 내어놓고 뒤적거리다가 종 문권을 한 뭉치 내어놓았다. 「이것은 너의 조부시대에 부리던 종들의 문권인데 너의 부친때 와서 집안형편이 가난해지니까 저희들끼리 떼를 지어 도망을 쳤는데 그 뒤에 소식을 들으니.. 2018. 7. 14. 옛 이야기(고전) - 대도 장팔이 (하) 형이 집행될 새남터로 행하는 거리에는 벌써부터 소문을 듣고 몰려온 군중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세상에 짜하게 이름난 대도 장팔을 한번만이라도 보려고 모여 든 사람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목을 늘였다. 그나마 영문을 모르는 사람까지도, 도대체 무슨 구경이기에 이다지도 야단법석들인가 싶어 어리둥절하면서, 역시 군중들 틈을 비집고 끼어 드는 것이었다. 「저기 장팔 온다. 울지마라!」 하면 보채면 아이도 이내 울음을 그친다는 그다지도 떨치던 협도 장팔이, 서울 장안 오부중에서도 남촌 아랫대에 사는 빈민들에게 있어서는 장팔은 그야말로 고마운 신령님처럼 섬겨졌다. 끼니를 굶고 아침 죽 거리가 없는 집에는 의례 한밤중이면 장팔이가 바람처럼 나타나서 로방에 엽전 몇 잎씩을 놓고 간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널리 알려진 .. 2018. 7. 13. 옛 이야기(고전) - 대도 장팔이 (상) 암흑칠야의 삼경 바람처럼 달려와서 역시 바람결인양 날렵하게 높은 담벼락을 훌쩍 뛰어넘은 장팔, 쥐새끼 걸음으로 소리 없이 당대의 세도가 엄청난 우의정 정시우의 집 안채 비밀창고로 다짜고짜 덤벼들었다. 이곳간에는 소문데로라면 금은보화가 가득할 것이다. 장팔의 눈은 어두울수록 오히려 빛났다. 고양이 눈처럼… 창고에는 굉장히 다부진 자물쇠로 잠겨져 있다고 했다. 과연 처음 보는 맹꽁이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참으로 훌륭하게 만들어진 자물쇠였다. 장팔은 냉큼 그 맹꽁이 자물쇠를 매만지면서 감탄해마지 않는다. 근래에 웬만한 곳간이나 다락을 자기 집 드나들듯이 횡행하는 도적들이 있어 간담이 서늘해진 양반집에서들은 다투어 튼튼한 자물쇠를 구하게 되었거니와 하물며 우의정 정시우 같은 재보를 가진 집은 특별히 만든 서양.. 2018. 7. 12. 옛 이야기(고전) - 의병장 장지현 (하) 지난 줄거리 의병대장 장 지현은 의병 2천여명을 거느리고 추풍령고개를 방어하고 있는 방어사 조경의 관군 오백여명과 합세하여 왜군 5만 대군과 대치 일전을 벌리는데 의병대장 장 지현의 기지로 군사를 사방으로 흐터 잠복케 하고 저녘에는 불을 피워올려 엄청나게 많은 병력이 고개 위에 포진한 것처럼 하여 적의 선봉부대를 무찌른 신출귀몰의 전법을 구사한다. 왜군 제삼군의 선봉이 추풍령 푸르게 우거진 산기슭에서 일진이 꺾이고 보니 왜병들은 겁이 버럭 나서 다시 계속해서 고개로 기어오르지 못하고 추풍령아래 금산(지금 김천 앞벌) 넓은벌에 퇴진을 하고 우리 편 군사의 동정을 살펴 보고 있었다. 해가 뉘엇뉘엇 서산에 질 무렵 의병대장은 방어사에게 품해 사뢴다. 「병법에 의병을 두어 적의 군사를 연혹시키라 하였사온데 다행.. 2018. 7. 11. 옛 이야기(고전) - 의병장 장지현 (상) 방어사의 진 밖이 떠들석하면서 많은 군사와 병마의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이윽고 군관 하나가 방어사 조경의 앞에 나타나 거래를 드린다. 「황간 의병대장 장지현 어른께서 의병 이천여명을 거느리고 오셔서 사또를 보입기 청합니다.」 방어사 조경의 입이 빙긋이 벌어진다. 「의병대장 장삼괴 선생이 오셨단 말이냐? 빨리 이곳으로 들어오시게 해라.」 삼괴란 장지현의 아호다. 조금 뒤에 나이 육십이 가까운 기상이 늠름한 인물이 군관에게 안내되어 들어오는데, 갑주에 투구쓰고 긴 칼을 옆에 차서 위풍이 당당하다. 방어사 조경은 신을 거꾸로 끌고 급하게 당아래 내려서 의병대장을 맞아들인다. 「삼괴선생 어려운 출입을 하십니다. 이렇게 몸소 싸움터까지 찾아주시니 우리 전체의 영광이 옵니다.」 방어사 조경은 장지현의 손을 덥석.. 2018. 7. 10. 옛 이야기(고전) - 양산벌 싸움 무열왕은 당상에 높이 앉아 굽어보았다. 당하에는 당당한 문무백관이 이마를 조아리고 무열왕의 하교를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왕은 수염을 한 손으로 쓸었다. 그 모양은 매우 침통함을 나타낸 것이다. "흐음……" 숨을 들이 쉰 뒤에 입을 열었다. "경들은 이 난국을 어찌하면 트고 나갈 수 있겠나 말 좀 해보오!" "……" 물 뿌린 듯 조용했다. 왕은 입을 다물고 잠간 쉬었다 다시 말했다. "백제는 저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신라를 멸하려고 하고 있소. 항상 면종 배반하는 백제 그 백제가 대군을 몰아 신라의 변방을 지분덕거리더니, 올 가을에는 소천성을 침공하고 우리 성주의 목을 베어 장대에 효수하고, 우리 군사 수천명을 사살하였소. 지금 조천성은 백제군이 점령하고 있으며, 다시 서라벌을 노리고 양산 길로 들어온다.. 2018. 7. 8. 옛 이야기(고전) - 지경과 낭도 신라 진성여왕 시대 어느 봄날 신라서울 경주의 남산에 있는 포석정에 한 무리가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효종랑은 신라 화랑의 한 사람으로서 재상의 명문인 집안 그리고 서울 경주에서도 손꼽히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지혜가 특출하고 덕이 있는 성품의 그는 여러 화랑들의 존경을 받을 만했다. 이날 효종랑은 자기 밑에 있는 많은 화랑도들을 데리고 포석정에 와서 놀이를 하는 것이었으니 머리에 꽃무늬를 수놓은 두건을 쓰고 베옷에 동철대를 두르고 삼신을 신은 예쁘장한 소년이 바로 효종랑이었다. 효종랑은 화랑도들과 함께 옛 화랑의 이야기도하며 유쾌하게 놀고 있었다. 한창 그렇게 놀던 중 화랑도 중의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일어서며 말을 꺼냈다. 「오늘은 이 포석정에 와서 아주 재미있게 놀았는데 내일은 또 어디 가서 노는게 .. 2018. 7. 7. 옛 이야기(고전) - 산돼지의 인연 고구려 고국천왕이 세상을 떠난 후 왕후 우씨는 음란한 생활을 계속하며 시동생인 산상왕을 사랑하여 왕으로 하여금 다시 왕후를 맞이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일시 국내가 소란하여 한나라 요동태수의 군사력을 빌려다가 국내에서 남은 형제간에 싸우는 등 추태를 부리었다. 산상왕은 왕후 우씨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 사실상 정치도 올바르게 하지 못하였다. 형수를 데리고 사는 몽고풍속이 어느 틈에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산상왕으로서는 항상 사랑에 대한 불만을 품게 되었다. 그뿐아니라 왕은 왕비 우씨 이외에 다른 여성을 상대하지 못하게끔 되었다. 그런중 왕후 우씨의 몸에서 아들이고 딸이고 간에 없어 산천에 기도들이게 되었다. 그럴수록 왕비 우씨는 이미 나이 많아 아들을 낳을 가망도 없어졌다. 어느날 왕은 사냥하.. 2018. 7. 6. 옛 이야기(고전) - 오층탑의 인연 8월 보름날 밤이면 황룡사 오층탑을 돌면서 자기 소원 세 가지를 외우며 기도를 드린다. 그러면 그 해가 가기 전에 그의 소원은 고스라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명 처녀는,(이 나라를 흥하게 도와 주소서) (우리집 부모 형제에게 많은 복을 주소서) (그리고 이 몸에게, 좋은 낭군 한분을 점지해 주웁소서) 이렇게 세 가지 소원을 입속으로 외우면서 그 탑 둘레를 두 번 돌았다. 그리고 다시 이어서 세 번째 돌고 있는데 뜻밖에 반대쪽으로 돌아오던 웬 무사 한 분과 서로 마주치었다. 서로 주춤하는 동안에 두 남녀는 시선이 부디쳤다. 동시에 속으로 『어머나!』 소리를 치면서 쳐다보는 순간에 그만 만명 처녀의 정신이 깜박했다. 갑자기 오층탑 옆을 돌다가 우연하게도 만난 처녀와 무사. 그들은 서로 못볼 사람을 .. 2018. 7. 5. 옛 이야기(고전) - 천하장사 (하) 지난 줄거리 천하장사 길천은 호랑이, 곰등을 사냥하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날이 저물어 쉬어 갈 곳을 찾기 위해 외딴집에 다달으니 주인왈 오늘 저녁에 도둑이 와서 생질녀를 첩으로 빼앗아 가는 날이니 제발 구해 달라는 하소연인즉 길천이 생질녀로 변장하여 신방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도둑대장 무달이는 신부로 알고 길천이에게 덤벼든다. 길천은 돌덩이 같은 주먹으로 사정없이 후려치니 무달이는 혼미백산 도망가 버린다. 또한 길천은 주인의 부탁을 받고 도둑놈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소굴로 잠입하여보니 각 방마다 여승과 더불어 음탕한 짓을 하고 있어 길천은 분을 참지 못한다. 길천은 못 볼것을 보았다는 듯이 침을 탁 뱉고 다시 맨 구석에 있는 가장 큼직한 방 앞으로 가서 손가락에 침을 묻혀 문구멍을 가만히 뚫고 들여다보니 땡초.. 2018. 7. 4. 옛 이야기(고전) - 천하장사 (상)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나이 열두살 때 임진왜란을 만나 여섯살난 동생을 등에 업고 산중으로 피난하여 3년 동안이나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던 길천소년은 왜군이 물러가매 고향으로 돌아와 사촌형네 집에 몸을 의지하게 되었다. 남길천은 나이 스무살에 접어들자 기운이 장정 수십명을 능히 당할만 하고 또 몸이 날래어 주로 활과 철퇴를 가지고 산중으로 다니며 사냥을 하다가 짐승가죽을 팔아 그 돈으로 어린 동생을 서당에 보내는 한편 저녁으로는 열심히 병서를 익히고 낮이면 산으로 올라가 여러가지 무예를 연마했다. 스물네살이 되매 앉은자리에서 한말 술을 마시고 고기 열근을 먹으며 활을 쏘면 빚나가는 법이 없다. 어느해 초겨울, 길천은 곰의 가죽으로 만든 벙거지를 쓰고 50근 짜리 철퇴를 차고 활을 메고 철원 보가산으로 사냥을.. 2018. 7. 3.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