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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92

옛 이야기(고전) - 아랑낭자의 영혼 앞이 확트인 영남루 언덕위에서 쳐다보는 초생달의 아련함이 아랑 낭자는 심호흡을 하고 섰다. 강을 타고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함께 4월의 초생달 빛이 교교히 그녀의 피부에 와 닿고 있었으며 달빛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은 벌써 여러해 전의 일인 것만 같다. 초저녁 무렵 유모가 느닷없이 영남루에 달구경 가자고 꾈 때만해도 한가위도 아닌데 달은 무슨 달구경이냐고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따라왔는데 달을 본 순간 그녀는 잘 왔다고 희열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다. 강 건너 절이서는 초파일 연등제 준비가 한창인 듯 횃불이 환하게 타오르고있는 것 말고는 온 주위가 적막이 싸여 있기만 하다. 요즘처럼 울적한 나날은 이처럼 초생달빛이 차라리 적격이겠다고 아랑낭자는 생각하던 참이다. 벌써 수십.. 2018. 6. 8.
옛 이야기(고전) - 명당자리 강원도 어느 깊은 산골을 한 사나이가 정처 없이 헤매고 있었다. 그는 최씨라는 풍수지리에 능통한 풍수사였다. 풍수사였기 때문에 갑자기 돌아가신 선친의 무덤을 아무데나 쓸 수는 없었다. 어디엔가 있을 소위 명당 자리를 찾아 벌써 며칠을 이렇게 산 속을 헤매고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명당을 찾기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터득한 풍수지리설을 가지고도 그렇게 쉽사리는 명당자리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힘없이 발길을 돌리고야 말았다 해는 벌써 서산으로 기을어지 오래였다. 「오늘도 허사였구나」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직도 운명한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을 선친의 시신을 생각하니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급한 생각 같아선 아무데나 모실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그의 풍수사로서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집으.. 2018. 6. 7.
옛 이야기(고전) - 처녀의 원혼 한창 고구려의 충신들이 역적으로 몰려서 하루아침에 일가족이 몰살당하거나 삼족이 멸족되는 일이 수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역적으로 몰러 참살당하게 된 충신들 중에 이맹술이 끼여 있었다 이맹술은 원래 고구려 선대왕 때부터 충신으로 판서의 관직에 있던 대감이었으나, 왕건이 나라를 세우게 되어 절개를 굽히지 않고 이군불사라면서 한사코 버티었다. 왕건은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 당장에 죽이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리고 그 삼대 일족을 어린아이건 계집이건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몰살토록 하라! 추호의 사정을 두는 자는 살아 남지 못하리라!" 이러한 어명이 떨어지자 군사들은 일제히 이맹술의 집으로 달려갔다. 군졸들은 백여 간이 넘는 이 대감의 집에 불을 지르고, 남자들은 물론이고 그 권속 노비까지 모조리 참하.. 2018. 6. 2.
옛 이야기(고전) - 초립동이 장원 경상도 밀양에 김구겸이란 젊고 패기가 넘친 신임부사가 임명 되어왔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능이 비범한 재질이 있어 일찍부터 세간에 평판이 대단한 자이었다. 19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처음으로 배명받은 곳이 바로 밀양 부사 자리였다. 부사는 부임하자마자 백일장을 열겠다는 계획을 각 고을마다 방을 부쳐 널리 알리도록 했다. 그는 이렇게 하여 숨은 인재를 가러대서 새로운 시정을 베풀어 온 나라에 귀감이 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다. 낡고 잔재주를 부리는 권모술수 또는 부정관리들을 일소하고 새로운 인재를 백일장을 통해 등용시키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이런 내용의 방이 나 붙자 세상에 숨어살던 선비들은 속속 밀양 망으로 모여들었다. 이윽고 백일장은 전국에서 뜻있는 선비들로 하여금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해마마 열리는 .. 2018. 5. 31.
옛 이야기(고전) - 길순이의 기적 무섭게 찌는 삼복 더워도 한풀 꺾인 듯 싶은 9월의 일이다. "생선사려 생선이요." 초라한 무명 치마저고리를 걸치고 목이 휘어질 정도의 생선 괴짝을 인 복스럽게 생긴 처녀의 외치는 소리다. "에구 저 불쌍한 것" 우물에서 빨래를 하는 동네 아낙네가 중얼거리다가 일어섰다. "이봐 처녀 생선 한 마리만 줘." 아무래도 그냥 보내기가 안 되었던 모양이다. 처녀의 이름은 길순이라고 했다. 늙은 부모와 어린 동생 네 식구만의 생활이지만 그럭저럭 오손도손 살아 온 길순네는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가 중병으로 누워 버리면서 우리 동네 부자 집에 가서 양곡을 꾸어다 먹게 되었던 것이다. 몃 마지기 남의 논을 부쳐먹고 살아오던 길순네 집은 아버지가 덜컥하니 누워버리자 농사를 때마춰 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러자 논 주인은 다른 .. 2018. 5. 30.
옛 이야기(고전) - 장사못의 유래 『아이구 깜짝이야 누구야?』 숙영낭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뒤엔 높은 담장이요, 앞은 겹겹이 문이 있는 후원의 초당, 잡인의 출입이 금지된 성역같은 후원이다. 그러나 분명히 숙영낭자의 귀엔 낭자자신의 글귀에 화답하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누구세요. 거기 누구있어요?』 그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앞에는 어떤 건장한 사나이가 달빛을 가리며 다가와 서는게 아닌가. 『에그머니 누구야』 깜짝 놀란 숙영낭자는 치마자락을 거머쥐고 당황한 발길을 돌리려했다. 『작은 아씨 저올시다』 하는 그 사나이의 목소리는 분명히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누구야?』 『저 용칠이올시다』 하면서 그 사나이는 두말없이 숙영낭자의 섬섬옥수를 덥썩쥐었다. 『뭐 용칠이?』 용칠이라는 말에 숙영낭자는 조금은 안심이 되었으나 손을 잡히자 본능적.. 2018. 5. 13.
옛 이야기(고전) - 목부용 서린 정을(하) 몽태의 아내 부용은 스물하나의 젊은 계집이다. 예쁘장하게 생긴 모습에 매끈하게 풍염한 몸매는 쉰살의 중늙은이 도둑놈의 첩으론 좀 아까운 계집이었다. 부용은 원래 백정의 딸로 태어난 저주스련 운명을 가눌길 없어 어렸을 때부터 도벽이 생겨 열일곱살 때에는 어느덧 몽태일당에 끼게 되었다. 부용은 여간 남자 못지않게 도둑질솜씨가 비상했었다. 열아홉살 봄에 몽태 두목에게 강제로 몸을 망치고 그냥 늙은 두목품에 안기긴 했지만 진정 싫은 노릇을 할수없이 살아오고 있었다. 이럴무렵 곽쥐를 처음 보고 그만 마음이 온통 쏠렸으니 부용이 곽쥐를 사모하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굳어갔다. 오늘쯤 곽쥐가 찾아올 성 싶은 날이면 부용은 공연히 마음이 들떴으며 그녀의 화장은 정성이 깃들고 한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한번은 몽태가 없.. 2018. 5. 12.
옛 이야기(고전) - 목부용 서린 정을(상) 1. 협도 곽쥐 한가위를 지난 더위가 바람도 없이 기승을 피우는 날씨였다. 이날, 한나절이 좀 지나서 2018. 5. 11.
옛 이야기(고전) - 암행어사 이경조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외아들로 자라면서 청운의 뜻을 품고 서울 홍 판서 집에서 공부를 하다가 돌아온 이경조는 경기도 광주에서 과거가 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나라에서는 알성과를 보이게 되었다. 알성과라는 것은 조선시대 태종 14년(1414년)부터 시행돼 온 과거제도인데, 임금이 문묘에 참배한 뒤 성균관에서 보이던 것이다. 경조는 그 소식을 듣고 즉시 상경하여 과거에 응했고, 결과는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임금은 경조의 재주가 매우 뛰어난 것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삼남 암행어사를 명했다. 경조는 여느 어사들과 마찬가지로 찌그러진 갓에 헤어진 옷을 입고 마패를 감추어 거지 행세로 길을 떠나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돌며 백성들의 사정을 살피게 되었다. 날씨는 더워 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 2018. 5. 10.
옛 이야기(고전) - 기건(하) 길운이의 아버지가 말을 계속하는데 이러하다. “저희가 짐승의 밥이 되지 않고 대감마님 덕분으로 지하에 편히 쉬게 되었사오니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사옵니다. 그러하여 그 은혜의 만 분의 일이라도 갚아 드릴까 하고 이렇게 찾아와 감히 아뢰옵니다” 길운이 아버지의 말에는 그만한 내력이 있다. 십여 년 전에 기건이 제주목사로 부임했을 대 그 지방 풍속을 고쳐준 일이 있는데, 그 중에 장례 지내는 일도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를 산 속에 버리거나 물 속에 띄워 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것을 정중하게 매장하도록 권장하여 그 때부터 시체를 매장하는 습관이 생겼다. 매장할 때에는 양지바른 좋은 땅을 골라하도록 지도를 했다. 길운이 아버지 말은 그것을 가리켜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 일을 .. 2018. 5. 9.
옛 이야기(고전) - 기건(상) 청파 기건은 다 쓰러진 헛간 암에 서서 감개가 헤아릴 길 없다 삼간누옥이란 말은 들었어도 이건 삼간도 못 된다. 이건 누옥이라고 해야 할까 그나마 누옥이란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이 거처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하다(이 헛간에서 그분이 일생을 마치다니.) 기전이 "그분" 이라고 한 사람은 다른사람이 아니라 송설헌 권홍을 이르는 말이다. 권홍은 조선시대 태종 때의 명신이다. 그의 딸이 태종의 빈으로 있었고, 그는 영가군이라는 군호까지 받았다. 태종15년(서기 1415년)에 판도령부사(왕실의 친척의 친목을 위한 사무를 처리하던 "돈령부"의 종1품 벼슬)가 되었고, 세종 5년(서기 1423년)에는 영중추부사가되였다. 중추부는 왕명의 출납·병·숙위 등을 맡아보던 관청인데 그 무렵에는 중추원이라고 했다. 그 중추원.. 2018. 5. 8.
옛 이야기(고전) - 광산왕 백두산에서 동남 남쪽으로 활몸 모양의 곡선을 이루며 뻗어, 함경북도와 함경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마천령 산맥, 이 산맥에는 높이가 2,000m넘는 산들이 많은데, 그 남쪽 끝 부분에 마지막 높은 재가 있으니 마천령이다. 마천령의 높이는 725m. 동쪽으로 이십리에는 성진, 남남 서쪽으로는 단척이 오십리 쯤에 있다. 마천령을 이판령이라고도 하는데, "이판"이란 말은 옛날 여진족의 말로 "소"를 일컫는다. 어느 날, 여진 사람이 마천령 아래에서 송아지를 팔았는데, 어미 소가 송아지를 찾으러 높은 재를 넘어가는 통에 길이 생겨 소 임자가 그 길로 좇아간 다음부터 여러 사람이 왕래하면서 이재이름을 이판령 즉 소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마천령의 산세가 웅장하여 영기가 서린다고 부근에서 큰 인물이 날 것.. 2018. 5. 7.
옛 이야기(고전) - 억울한 사연 때는 조선시대 성종(9대 임금)초기 서기 1470년 께다. 충청도 청풍 고을에서 괴나리 봇짐을 지고 허술한 차림으로 서울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 선비. 나이는 30이 넘었을까. 얼굴에는 핏기가 없이 궁한 티가 흐른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안 되면 할 수 없지. 더 어째 보는 수도 없고…….) 비장한 각오를 하는 그는 사정이 딱했다. 이름은 김 위. 가난한 선비로 과거를 보려고 공부도 했고, 과거가 있을 때마다 서울을 오르내리기 벌써 다섯 번째. 요즘 말로는 이력이 난 재수생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생활은 더욱 궁핍해져서 노자마저 여의하지 않다. 노정의 반쯤은 무전 여행(그 시대에는 과객질)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다. 으례 점심을 굶고,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말도 탈 형편이 못되어 다리는 아프고,.. 2018. 5. 5.
옛 이야기(고전) - 애끓는 비련(하) 그로부터 사흘 뒤 조 공자와 월랑을 위하여 잔치가 벌어졌다. 정식 혼인식은 아니니 예복을 갖추지는 않았으나 비단옷을 입혔고, 승상 부부에게 큰절로써 인사를 드리고 잔칫상을 대했다. 조 공자도 준수하고, 월랑도 아리따와 보는 사람들은, 마치 천생연분으로 만난 선남 선녀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조공자는 월랑을 맞아 흐믓했지만, 승상댁 하인들은 월랑이 팔자가 좋아서 좋은 자리를 만났다고 부러워했다. 잔치는 정식 축하 모임 못지 않게 흥겹게 진행 되었다. 축하잔치가 끝나고 단둘이 신방에든 꽃다운 부부는 하늘에 오를 것만 같다. "월랑이, 내가 머나먼 타향에서 이런 기쁨을 맛보다니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야 누가 이런 일을 꿈엔들 생각했을까." 순수하고 감격하기 쉬운 스무살을 바라보는 두 부부는 감.. 2018. 5. 4.
옛 이야기(고전) - 애끓는 비련(상) "서방님, 저번에 대감께서 데러오신 처녀가 보통으로 예쁜것이 아닙니다." "그렇더군. 나도 잠깐 본일이 있는데, 참 복숭아꽃같이 예쁘데." 말을 주고받는 사람은 청지기와 스무살이 될까말까한 청년. 원나라 대승상 탈탈의 집이다. 탈탈공이 변방 순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웬 처녀아이를 데려왔던 것이다. 그 처녀에 대해서 승상댁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칭찬했다. "그런 어여쁜 처녀를 어디서 데리고 오셨을까요 ? " 궁금한지 청지기가 청년에게 묻는다. "글쎄 잘은 모르겠는데, 대감께서 순시를 도시다가 어느 깊은 숲속에서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듣고 하인에게 알아 보게 하였더니, 하인이 그 처녀를 데리고 왔다나봐." 청년의 이아기는 계속된다. 하인이 가본즉, 어떤 무뢰한이 그 처녀를 끌고 가려고 하는데 처녀는 안.. 2018. 5. 3.
옛 이야기(고전) - 비형 왕자(하) 도깨비들의 장난으로, 가난한 집안이 별안간 부자가 되기도 하고, 부잣집이 빈집같이 된 집도 있고 웃고 울고 하였다. 성안 사람들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이 소문도 이 대궐안에 퍼졌다. 진명왕도 들었다. "짐이 나라를 다스리는데에 부덕한 것이로다. " 진평왕은 그 해괴한 도깨비들을 처치하려고 궁리를 짰다. 그러는 한편으로 진평왕에게는 또 한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다. 밤만 되면 극진히 마음을 쓰는 비형이 어디론지 나갔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온다는 궁녀들의 보고였다. "이 아이가 어디를 간단 말인고?" 진평왕은 매우 궁금히 여기고, 그 사실을 알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힘이 세고 담대한 용사들을 불러 들이게 하니 한 쉰 사람쯤 모였다. "너희는 잘 들어라. 비형이 밤만 되면 궁궐을 나갔다가 새벽에야 돌아.. 2018. 5. 2.
옛 이야기(고전) - 추남과 김유신(하)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김 유신에게 과일 나눠 주던 그 아가씨도 갖은 아양을 떤다. 참다못한 김유신은 체면도 잊어버리고 안타까운 심정을 호소했다. "아가씨 ! 괴롭소. 못 참겠구료" 그러자, 그 아가씨도 수줍은 태도를 지으면서도 알겠다는 듯이 말한다. "서방님의 뜻은 알겠나이다. 그럼 저 친구분은 저 두 아가씨들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따로 숲 속으로 들어가십시다" 김유신은 백석에게 눈짓을 하고 그 아가씨와 함께 깊숙한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 아가씨는 별안간 백발 신령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완삿내를 지키는 수신이오. 저 두 여자도 나와 같은 신이오. 그리고 김공과 동행하는 백석은 고구려 자객으로, 공을 해하려 하고 있소. 우리는 공이 위험하기에 사람으로 변신해서 그 사정을 알.. 2018. 4. 30.
옛 이야기(고전) - 추남과 김유신(상) "영감! 주무셔요? 좀 일어나 보셔요" 잠들어 있는 남편을 깨우는 아내는 만명 부인이다. 만명 부인의 아버지는 24대 진흥왕의 동생 흘종이다. 할아버지는 23대 법흥왕의 동생이요, 할머니는 법흥왕의 딸이다. 그러니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숙질간이었다. "응, 왜 그러오?" 놀라 잠에서 깬 남편은 김 서현이다. 김 수로왕이 세운 가락의 10대(마지막) 구형왕이 재위 42년만인 서기 562년 9월에 신라에 항복하여 그 아들 무력은 신라의 장군이 되었는데, 서현은 이 무력의 아들이다. "참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영감도 들어 보셔요." 때는 신라 26대 진명왕 16년(서기594년) 3월 경진날이다. 만명 부인이 남편 김 서현 장군의 얼굴을 쳐다 본다. "이상한 꿈이라니 실은 나도 기막힌 꿈을 꾸는데 부인이 흔들.. 2018. 4. 29.
옛 이야기(고전) - 소년 황창 삼국 시대의 말엽,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 14년, 신라의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서기 654년에 진골(부모 중 한 쪽만이 왕족)인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이다. 삼국시대는 서로 치고 물리치고 하던 때라, 신라로서는 비록 당의 힘을 빈다 하더라도, 북쪽에는 고구려, 서쪽에는 백제를 적으로 두고 있어, 둘을 함께 거꾸러뜨릴 수는 없고, 그중 하나를 먼저 쓰러뜨러야겠는데, 고구려는 지금의 황해도 함경 남도를 남단으로하여 만주 지방까지 점령하고 있어 광대한데 비해, 백제는 주로 지금의 충청남도와 전라 남북도를 점하고 있을 뿐이어서 백제를 먼저 쳐 없애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신라는 지금의 강원도·경기도·충청북도·경상남·북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히 신라는 백제를 자주.. 2018. 4. 28.
옛 이야기(고전) - 인종과 내란(마지막) 묘청의 무리가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려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첫째, 이유가 '재앙을 피하고 복된 나라를 이룩하자'는데에 있었다. 그런데 그 재앙이 다른데도 아닌 서경에서 일어났으니 어찌 되겠는가, 벼락이 30여 군데나 떨어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괴변이다. 묘청 무리는 우그렁 바가지가 되어 애간장이 녹아나고 얼굴을 들지못할 지경이 되었다. 배알이 꾀어 역한 김 부식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인종이 서경에서 돌아오자, 지체하지 않고 상소를 했다. "간신 묘청 일당은 천인이 공노할 흉계를 꾸미고 있사옵니다. 상감께옵서는 더 이상 서경에 납시어서는 아니되온줄로 아뢰오." 인증도 그 말을 인정했다. "경의 말이 옳도다. 다시는 서경 행차가 없을 것이니 안심하라." 이렇게 되니, 묘청 일당은 크게 당.. 2018. 1. 13.
옛 이야기(고전) - 인종과 내란(하) 이자겸을 몰아낸 척준경은 그 공로로 위사공신이란 칭호를 받고, 문하시중(나라의 모든 정사를 도맡아 보던 대신으로 정일품)이라는 최고 벼슬에 올랐다. 척준경은 본시 가난하여 학문을 하지 못하고 무뢰배와 어울러 지내다가 계림공(고려 15대 숙종 임금의 왕자시절)의 종자가 되어 계림공 댁에 드나들었다. 1104년(숙종 9년)에 평장사 임간을 따라 동여진 정벌이 공을 세웠고, 1107민(예종 2년)에는 윤관 장군을 따라. 또 동여진 정벌에 공을 세워서 상서공부의 원외랑(정육품 벼슬)이 되었다가, 인종 초에 이자겸에게 붙어 이부상서(정삼품으로 지급의 내무장관)가 되고, 이어서 중서문하성(서무를 총할하고 간쟁을 맡은 관청)의 참지정사(종이품 벼슬)를 거쳐, 문하사랑 평장사(문하시낭 평장사=정이품 벼슬)로 승진한 무.. 2018. 1. 12.
옛 이야기(고전) - 인종과 내란(중) 양위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이수의 말을 듣자. 이 자겸은 억지 춘향으로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상감께서는 아직 젊으시고, 신하인 내가 어찌 그런 무엄한 일을 생각인들 할 수 있겠소, 추호도 그런 생각이 없소이다."하고서, 임금 앞에 나아가 "폐하, 당치도 않으신 분부를 거두어 주시고, 정사에 힘쓰시기 바랍니다."고 아뢰었다. 인종이 이 자겸의 집에서 연희궁으로 옮겨진 뒤에도 주위에는 이 자겸의 무리들이 득실거려 자유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중, 배가 맞아서 한패가 되어 임금에게 맞섰던 척 준경과 이 자겸 사이가 조그만 일로 벌어지게 되었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더니 그 짝이었다. 하인들이 싸운 것이다. 어느 날 척 준경의 하인과 이 자겸의 하인이 길에서 만났다. "뻔뻔한 낮을 하고 있.. 2018. 1. 11.
옛 이야기(고전) - 인종과 내란(상) 고려 17대 임금 인종때에 큰 내란이 두 번 있었다.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이다. 이자겸은 1108년에 고러 16대 예종(인종의 아버지)에게 둘째 딸을 시집 보내어 급사중(문하성 정4품 벼슬)이던 벼슬이 중서시랑평장사(무를 총할하고 간쟁을 맡은 중서 문하성의 정2품 벼슬)로 뛰어오르고, 익성공신, 동덕추성 좌리공신 소성국개국백에 책봉되었다. 예종 17년(서기 1122년) 3월께부터, 임금은 앓기 시작하여 소생의 가망이 없었다. 예종 비 순덕왕후(이자겸의 둘째딸. 예종이 죽은 뒤 문경 태후)가 낳은 맏아들 해는 14살인데 예종10년에 왕태자로 책립되었으므로 응당 예종의 뒤를 잇게 된다. 이자겸의 기쁨은 예종의 병환과 정비례하여 커갔다. 그해 4월에 임금의 병은 위중하여, 마침내 45세로 승하했다... 2018. 1. 10.
옛 이야기(고전) - 천추태후(하) 서울로 쳐들어가는 강조의 군대가 황해도 평주에 이르렀다. 서울(개성)까지는 하룻길이다. 평주에서 강조는 뜻밖의 소문을 들었다. 김치양 일당이 판을 치고 있으나 목종은 궁중에 살아 있다는 것이다. 강조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낙담했다. 이상한 일이다. 충성심이 강한 장군이라면 임금이 샅아 있다는 것을 알면 도리어 안심하고 좋아해야 할 텐데 낙담을 하다니. 강조의 속은 이렇다. (임금이 죽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김치양 일당을 무찌르고 나라를 구하고 큰공을 세우려 했다. 본래 임금은 마음이 약해서 태후에게 거스르지 못한다. 임금 목종이 살아 있는 한, 자기가 김치양 일당을 쳐부술 수도 새 임금을 옹립할 수도 없다. 나아갈까 돌아갈까.) 그러니, 강조는 야심을 품고 있었단 것 같다. 강조는, 목종이 대량군을 맞아.. 2017. 12. 23.
옛 이야기(고전) - 천추태후(중) 김치양이 목종을 없애려는 음모는 꾸준히 계속 되었다. 눈치를 챈 목종은 더없이 몸조심을 하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김치양을 대역죄로 몰아 참형이 처하고 싶기도 하나, 그렇게 하면 어머니인 천추태후도 다치게 될 것이고, 사실은 목종에게는 그럴만한 실권이 없었다. 그러던 중, 서기 1009년 정월이 궁궐 가까이 불이 났다. 그 불의 내력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그 해가 목종이 등극한 지 12년째 되는 해다. 그 날은 달이 밝아, 목종이 상정전에 나와 달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이해 들어 첫 반월이라 감회가 깊다 저 달처럼 나라가 원만하고 평온하기를 바라고 싶다." 그만큼 목종은 심중이 괴로운 것이다 곁에 서 있는 신하들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 궁궐 가까이에 있는 기름창고에서 불길이 솟아 올랐.. 2017. 12. 22.
옛 이야기(고전) - 천추태후(상) 서기 900년. 왕건이 궁예를 섬겨, 지금의 충주, 광주, 남양 등지를 경략하고, 906년에는 상주의 사화진에서 견훤의 군대를 격파하고 909년에는 진도 근방까지 공략, 나주를 손아귀에 넣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궁예가 태봉국을 세우는 데에 왕건은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었다, 애꾸눈인 궁예는 나라의 판도가 넓어지고 안정이 되자, 성질이 포악하여지고, 걸핏하면 신하들을 죽이고 귀양보내고, 백성들을 들들볶아 나라가 편할 날이 없었다. 평소에 왕건과 운명을 같이 하며 장래를 도모해 오던 신숭겸, 홍유, 배현경, 복지겸 등 용장이 참다못해,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918년 6월15일에 고려를 세웠다. 고려 임금이 된 왕건은 919년에 도읍을 개성으로 옮기고 선정을 베풀었다. 935년에는 신라의 마지.. 2017. 12. 21.
옛 이야기(고전) - 버들잎의 인연(하)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를 죽인 연산주는 성균관을 폐하고 오락 장소로 만들고, 원각사를 폐하여 연방원으로 고치고 흥청들과 함께 지내며, 채청사를 각 지방에 보내 미녀를 끌어들이고 국정을 도외시하였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연산주에게 파직되었던 전 이조참판 성희안은 지중추부사 박원종과 밀약하고 이조판서 유순정의 도움을 얻어 1506년 9월에 연산주가 장단으로 놀러간 틈을 타서 진성대군을 추대할 계획을 세웠으나 장단 놀러 가는 일을 중지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때마침 호남 지방의 유빈, 이과 등이 진성대군 옹립의 격문을 전하므로, 훈련원에 장사들을 모아 광화문밖에 있던 왕비 신씨의 형제 신수권과 신수영 및 임사영 등을 죽여 궁중의 측근자를 없앤 다음, 성희안은 백관을 거느리고 윤대비(.. 2017. 10. 14.
옛 이야기(고전) - 버들잎의 인연(상) 이조 제10대 연산주는 부왕 성종의 뒤를 이어 1495년에 임금의 자리에 앉았으나, 포악하여 이름 있는 많은 문신들을 죽였다. 1498년(연산주 4년)에 실록청이 개설되어 '성종실록'의 편찬이 시작되었는데, 김일손이 기초한 사초에 끼이어 있는 김종직의 조의제문이라는 글은 세조를 비방한 것이라고, 이극돈과 유자광이 연산주에게 고해 바쳤다. 연산주는, 죽은 김종직의 관을 파헤쳐 시체의 목을 베고, 김일손·권오복·권경유·이목·허반 등을 선왕을 나쁘게 기록하였다고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고, 강겸·표연말·홍한·정여창·강경서·이수공·정희량·정승조 등은 불고지죄로 귀양을 보내고, 이종준·최부·이원·이주·김굉필·박한구·임희재·강백진·이계맹·강혼 등은 방조죄로 귀양 보내고, 어세겸·이극돈·유순·윤효순·김전 등은 태만죄로.. 2017. 10. 13.
옛 이야기(고전) - 영조와 향나무 영조와 향나무 이조 제22대 왕 영조는 서기 1725년부터 1776년까지 52년간 임금을 지냈다. 이조 역대 임금 중에서 임금을 가장 오래 지냈고, 나이도 83세로 가장 오래 살았다.그런데 그의 생모 최씨는 농민의 딸로서 궁중에서 무수리로 있던 천한 여자였다. 숙종이 정비 민씨를 내쫓고 희빈 장씨를 후비로 불러들인 뒤, 차차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장씨의 간특함을 알게 되고 민비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때의 일이다. 밤에 잠을 못 이루고 궁내외를 헤매는 일이 잦았는데, 하루는 깊은 밤중에 궁중 깊숙한 곳에서 등불이 비쳐 나오는 것을 보고 가 본즉, 벽에 옷 한 벌을 걸어 놓고 푸짐히 차려 놓은 음식상 앞에서 한 무수리가 절을 하고 있는 광경이 문틈으로 들여다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선 .. 2017. 10. 12.
옛 이야기(고전) - 염파장군과 인상여 염파 장군과 인상여 전국시대 조나라 혜문 때의 일이다. 제나라 격퇴에 공을 세워 상경의 위에 오른 염파 장군은, 요사이 매일 같이 불경을 털어 놓는 것이 일수다. 「나는 조나라 장군으로서 산전수전하며 공을 세워 왔다. 그런데 그 젊은 인상여란 자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말재주 좋은 덕분으로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위는 나 보다 위에 있으니 이럴 수가 있느냐. 뿐만 아니라 그자는 환관의 장인 목현의 사인이 아니었던가, 내가 그 비천한 아래에 있다니 정녕 부끄러운 일이다. 이 다음에 상여를 만나면 꼭 챙피를 주고야 말겠다」하며 떠들어댔다. 인상여가 염파보다 상위에 있게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나라 혜문왕은 초 나라의 보물인 화씨의 구슬을 얻었다. 그런데 진의 소왕은 혜문왕이 그 보석을 지니고 있다.. 2017. 10. 4.